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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20170924)

내 입안에 남아있는 달달한 초콜릿 때문일까 에이오피아 예가체프의 첫맛이 달아서 놀랐다. 그리고 이내 뒤따르는 예가체프의 따뜻한 신맛. 이 커피는 어쩌면 오늘 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 에피소드 1
한 여인이 인적없는 해안가에서 바다를 향해 모로 누워 있다. 이렇게 보면 한없이 불쌍해보이고 위험해 보이지만 저렇게 보면 마치 바다를 이불 삼아 누워있는 모습이다. 평화롭다. 누군가 다가간다. 저기요, 위험해요. 그 여인은 눈을 뜬다. 아, 네... 이후에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간다. 한참 지켜봤어요. 그래요? 저 모르시겠어요?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예전에 작품을 같이 했습니다. 연출부입니다. 아,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감독님도 같이 내려오셨습니다. 장소 헌팅 중입니다. 같이 가실래요? 여인은 배우였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여인은 그 남자를 따라 장소를 옮겼다. 보고 싶었던 그 감독을 다시 만난 여인은 꽁꽁 싸맸던 감정을 표출했다. 나는 폭탄이잖아. 그 감독과 여인의 가슴 저리는 사랑놀이에 스텝들은 안절부절못한다. 여인은 술이 술을 마시는 듯 연신 술잔을 비우더니 이내 머리를 떨어트렸다.

저기요. 위험해요. 일어나세요. 여인은 눈을 떴다. 비릿한 바닷내음, 옷에 묻은 해안가 모래들. 웬 남자가 서서 여인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아, 꿈이었구나. 여인은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며 창피한 듯 자리를 뜬다. 아마도 정신 차리기 위해 한적한 카페에 가서 에디오피아 예가체프를 마시겠지.



#에피소드 2
일요일을 일요일답게 보내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겠지만 최고는 갈 데까지 가 보는 늦잠이다. 늦잠의 지존은 자다 목말라 깨서 마신 물 때문에 잠자다가 화장실 다녀오고 또 잠자리에 드는 신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는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시험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딸과 실랑이를 벌이는 아내의 잔소리가 네 귀까지 오지 않는다. 분명 들리는데 내 귀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뭐라 뭐라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그 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집 두 여자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나의 처지가 현실이 되었다. 올 것이 왔다. 고개를 돌렸다.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인사동이다. 뜻밖에 내가 초대하고 싶은 외국 인사를 만난다. 난 한국말로 말한 것 같은데 그 양반이 다 이해한다. 그런데 그 양반은 계속 영어로 이야기한다. 묘하다. 바벨탑에 온 것 같다. 나는 청소년들이 시스템 사고 결과물을 보여주는 국제 콘퍼런스를 설명하고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12월 28일에 개최된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대견하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양반의 화색이 돌면서 연신 나에게 물어본다. 항공료, 숙박비, 체류비 중에서 어디까지 지원해주냐고. 나는 그 양반이 약간 실망하고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수준으로 답을 한다. 내 머릿속 플래시 메모리가 핑핑 돌아간다. 초대장, 포스터, 행사 홍보... 연말 행사가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목마르다. 눈을 떴다. 몸은 따뜻하고 팔은 저리다. 달력은 아직 9월. 꿈이다.

옷을 추려 입고 나작나작 발걸음을 돌린다.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에디오피아 예가체프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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