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전쟁, 또 10년의 모험, 그리고 영웅의 귀환
우리가 흔히 일리아스라고 하면 오딧세우스가 제안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속에 그리스군 특공대가 잠입해 있다가 승전에 도취된 트로이의 성문을 몰래 열어 삽시간에 트로이가 멸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 내용이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 스토리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일리아스의 다음 스토리를 '오딧세이아(천병희 번역본은 오뒷세이아)'로 보고 있다. 오딧세이아에는 트로이의 목마 계략으로 트로이를 멸망시킨 영웅 오딧세우스(혹은 라틴어 계열 언어에서는 울릭세스 또는 율리시즈로 표현)가 집이 있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 스토리가 일기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액자 형식처럼 구조가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엮여있다. 그렇다고 일리아스처럼 전쟁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또 죽어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는 비극이 아니라 오딧세우스와 그의 전우들이라는 선의 존재와 함께 그들을 방해하고 죽이려는 악의 존재들, 예를 들면 퀴클롭스, 세이렌 자매, 그리고 오딧세우스의 재산과 아내 페넬로페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구혼자들, 이렇게 선악의 구도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일리아스보다는 쉽게 읽히는 느낌이었다.
오딧세이아의 스토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오딧세우스를 찾아 떠나는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는 오딧세우스의 귀향 여정, 마지막 세 번째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오딧세우스이다. 물론 읽는 독자들마다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는지는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특히 세 번째 부분인 오딧세우스가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딧세이아에는 유독 지혜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서양 문화권에서 지혜를 상징하게 된다. 마치 동양,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제갈량과 같은 인물이 지혜를 상징하듯이 서양에서는 오딧세우스와 그의 조언자인 멘토르, 그리고 신이지만 아테나(미네르바)와 아테나의 상징인 부엉이를 지혜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지게 된다. 오딧세이아 초반부에 등장하는 텔레마코스에게 조언을 해주는 '멘토르'라는 인물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멘토'의 시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늙었지만 지혜로운 노인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나 텔레마코스, 그리고 오딧세우스에게도 충고를 던지는데, 지금 사회에서 '현명하고 믿을 수 있는 지도자, 상대'를 멘토(mentor)라고 지칭하고 멘토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흔히 '멘티(mentee)'라고 하는데 이 '멘토'라는 단어의 어원이 바로 이 '오딧세이아'에 등장하는 멘토르다.
오딧세이아가 인류 사회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혹자는 트로이의 전쟁을 그린 일리아스보다도 더 영향력이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먼저 오딧세이아는 '모험담', 즉 서양에서 '모험 이야기'를 기록한 소설, 수필 등등의 시조이다. 이 오딧세이아가 없었다면 지금 '캐리비안의 해적'같은 바다에서의 해적 모험 이야기나 '호빗', '반지의 제왕'같은 모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오딧세이아 중반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는 오딧세우스와 그의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외눈박이 괴물 퀴클롭스가 사는 섬에 갇혀 퀴클롭스에게 잡아먹힐 순간 오딧세우스의 지혜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서양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진정한 리더의 지혜를 그렸고, 세이렌이 나타나자 밀랍을 전우들의 귀에 바르고 자신은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는 오딧세우스의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의 희생 정신을 표현하였다. 특히 이 장면이 지나고 오딧세이아에서 나오는 가장 유명한 문구가 등장한다.
"그곳(퀴클롭스가 살던 동굴)에서도 우리는 나의 용기와 조언과 지혜에 의해 벗어났거늘,
생각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
(오딧세이아 12권 212절, 304 페이지)
오딧세우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겪는 고초들은 마치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고생과 닮아 있다. 이제 그토록 원하는 것을 눈 앞에 보고 넣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듯 오딧세이아에서도 그런 장면이 투영되어 있다. 10년만에 오딧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재산은 안티노오스를 비롯한 양아치들, 이른바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미 오딧세우스가 죽은 줄로 알고 그의 재산과 더불어 지혜롭고 미모가 뛰어난 오딧세우스의 아내이자 텔레마코스의 어머니인 페넬로페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이들이 오딧세우스의 집에 죽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이러한 구혼자들의 장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남편 오딧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서양 사람들은 오딧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를 지혜로운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분노에 휩싸여 다짜고짜 집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딧세우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부랑자로 위장해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자신의 유모였던 에우뤼클레이아 등등의 몇 명에게만 이 부랑자가 오딧세우스임을 알아차린다. 부랑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와 만나는 오딧세우스를 보니 그 침착한 모습에 더욱 몰입되었다. 절정의 그날이 왔고 페넬로페는 자신을 괴롭히던 구혼자들에게 한 가지 내기를 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오딧세이아를 각색한 모든 만화나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바로 구혼자들에게 오딧세우스가 쓰던 활로 화살을 쏘아 12개의 도끼를 꿰뚫은 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부랑자로 변한 오딧세우스는 그 활로 화살을 쏘아 12개의 도끼를 꿰뚫은 뒤 구혼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구혼자들의 대장 격인 안티노오스는 저 부랑자가 활을 쏘지 못할 줄 알고 술을 마시려 술잔을 입술에 댄 찰나에 화살이 안티노오스의 목을 관통한다. 이런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엄청나게 리메이크되어 등장한다. 방심하고 술이나 음식을 먹으려하는 사이에 죽임을 당하는 장면의 시초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자신의 집에서 분탕질을 치던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한 오딧세우스는 이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밝히고 가족들과 회포를 풀게 되는데, 트로이를 정벌하기 위해 떠난 지 20년만이었다. 이후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를 비롯하여 구혼자들의 유족들이 무리를 이끌고 오딧세우스와 한판 싸우러 가지만 멘토르(여신 아테나가 멘토르의 모습으로 변장해 나왔다고 표현함)가 싸움을 말리고 맹약을 맺음으로 오딧세이아의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된다.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워낙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들은 여기 저기서 들어왔기 때문에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았다. 하지만 오딧세이아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비롯해 인류에게 끼친 영향, 그리고 오딧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는 고초들을 지금 우리가 겪어 왔던,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고초들과 비교하면서 오딧세이아의 내용을 더듬어본다면 또 다른 임팩트가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리아스보다 오딧세이아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면서 마침내 그리던 곳으로 돌아오는 오딧세우스의 모습에서 인생이라는 큰 여행을 하면서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 바로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