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헛됨, 그리고 이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라는 소설 제목이 이유 없이 끌렸다. 설국... 눈의 나라..
일본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데 특히 몇몇 지방은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언젠가 '설국'을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한두 번 시도해보다 중도에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무슨 연애소설인가 싶어 '이게 뭐야~이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구시렁거렸는데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그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설국'에 나오는 눈.. 여행자.. 온천... 그리고 게이샤.. 일본 문화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아~하면서 뭔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국을 읽으면서 처음에 느낀 것이 '왠지 이 작가가 여행하면서 쓴 것 같은데..'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품의 영감을 얻는 매개체가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 중에 느끼는 감정들.. 특히 혼자서 가는 여행..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팁 몇 가지를 살펴본다면 아마 이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의 의미 그리고 '게이샤'라는 존재
먼저 여행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일치기부터 시작해 장기간, 그리고 목적지가 국내부터 해외까지 망라해서 모두 여행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여행 일정이 있는지 여부 또는 여행기간과 거리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설국'에서 시마무라의 여행은 일정이 없는 여행을 의미한다.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명소를 찾아다니며 이동하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여행이 아니다. 시마무라가 이런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게이샤인 고마코와의 대화, 그리고 이별에 대한 장면에서 좀 더 쉽게 몰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고마코의 직업으로 나오는 게이샤라는 직업을 알지 못한다면 이 소설을 읽고 아무 느낌도 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소재가 되고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요정이나 여관 등지에서 술자리 시중을 들며 손님의 주문에 따라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는 여자'를 말한다. 이렇게만 보면 무슨 술집이나 룸살롱의 접대부처럼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게이샤는 이런 존재가 아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몇 번 등장했지만, 게이샤는 예능뿐만 아니라 지식과 지혜 그리고 미모를 겸비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게이샤 수습생인 마이코 시절부터 엄격한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게이샤의 세계에도 룰, 이른바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체는 물론이가 정신까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 하면 게이샤로서의 인생은 끝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게이샤들도 사람인데 정이라는 것이 없을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소설 설국의 시작이자 명문이기도 하다. 시마무라가 눈의 고장(설국)에서 두 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요코, 또 한 명은 게이샤인 고마코이었다. 게다가 요코와 고마코는 또 병들어 곧 죽는 유키오와 연결되어 있다.
소설의 시작 부분이 바로 기차에서 시마무라가 요코와 유키오를 바라보는 장면인데 이들의 관계를 알게 되자 시마무라는 '헛수고'를 또 되뇐다.
알고 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에는 모든 것이 헛수고 투성이었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으면 안 좋거나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그런... 헛수고.. 솔직히 이 소설의 대부분이 시마무라와 고마코, 그리고 요코의 대화와 독백이 주를 이루는 대화와 감정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춤 연구를 하며 부질없이 떠돌아다니는 여행자, 그리고 하루하루 손님을 모시는 게이샤.. 이 여행자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그런 사람이다. 게이샤는 샤미센을 연주하면서 노래하거나 시를 읊조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그때만큼은 손님에게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쏟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이 손님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사랑을 하고 싶거나 애정을 가지고 싶은 대상은 곧 떠나거나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왠지 양날의 검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헛되게 방조하듯 바라보지만 그럴수록 고마코에 빠져드는 시마무라. 그리고 함께 화재를 보면서 서로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 그 순간 떠나야 됨을 인식한 시마무라. 이렇게 '설국'에서는 부질없음과 헤어짐의 모습들을 일본 특유의 정서로 묘사하고 있다.
모든 게 부질없는 헛수고니 사라질 것에 마음을 두지 말자?
아니, 그 부질없음 속에서도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애틋한가?
우리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마 이름 말고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 둘 사라질 것이다. 그러기에.. 사라져 갈 그것에 더욱 시선이 가게 마련일 것이고 또 그리워질 것이다.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모든 것이 그럴 것이다. 그저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던지고 시작하는 당일치기 여행부터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이 '설국'의 배경이 되는 일본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으로 떠나 이 소설이 준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만약 그곳을 가보고 나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