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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씨 Feb 06. 2018

바지로 사기치기.

나에게 잘 맞는 바지 사기.

니트와 셔츠로 탑을 마무리 했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이제 적절한 바지다.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두 가지. 필자의 바지는 대부분 클래식한 바지들이다. 허벅지 숨 못 쉬고, 종아리 터질 것 같은 딱 맞는 바지는 즐겨 입지 않는다. (물론 편하게 입는 청바지는 있다.)

이런 바지 좋아한다. 멋지잖아.

위의 그림처럼 칼주름 잡혀있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바지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바지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엔 저런 바지를 기준으로 작성할 예정이다.


그리고 여기 쓰여있는 바지 정보가 당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맞는 글을 쓰겠지만, 모든 이에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글은 내가 그동안 바지를 사면서 그리고 입으면서 '어떻게 하면 나의 굵고 짧은 다리를 가리면서 아름다운 바지 핏을 보일까'에 대한 고민과 검색의 결과물이다. 기준이 '나'라는 것이다. (명심하자, 이건 언제나 지극히 주관적인 패션 이야기이다.) 그러면 깔끔하게, 평소에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사기 위한 여행을 떠나보자.


바지 핏은 허벅지에서 부터.

만약 당신이 서양인 모델 체형이라면 아무 바지나 사도 되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 남자들의 체형은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굵은 다리를 지니고 있다. 즉, 슬림한 바지의 경우엔 허리에 맞추면 다리가 숨을 못 쉬고 다리에 맞추면 허리를 수선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런 체형의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바지는 다름 아닌 '테이퍼드 핏(Tapered fit)'의 바지이다. 쉽게 말하면 마르고 긴 다리가 아닌, 동양인 다리 모양과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진 바지이다.


헌데, 내 다리에 맞는 테이퍼드 핏의 바지가 뭔지 알면 이미 그 바지 샀지, 이 글 읽고 있지 않는다. (사실, 패션에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 슬림 스트레이트와 테이퍼드 핏을 보여주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과연 어떤 바지가 테이퍼드 핏일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지난번에 재어 놓은 나의 사이즈'이다. (없더라도 걱정 말자.) 개인적으로 모든 이에게 추천하는 바지의 사이즈는 바지 허벅지 단면 사이즈(밑위 끝 부분부터 반대쪽까지 잰다는 가정 하에)에 +1cm(~1.5cm) 가량의 여유가 남는 바지이다. 물론 이렇게 치수로 설명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간단한 눈치수, 혹은 체감 치수로 이야기 한다면 입고 앉았을 때 허벅지가 살짝 끼는 느낌이 드는 바지가 적당한 사이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충 이런자세. (물론 이 사람의 옷을 참고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세만 알아두자 자세만)


허벅지가 바지 사이즈의 기준인 이유는 단순하다. 허벅지 수선을 잘못 할 경우 바지가 망가져 버린다. 기성복 바지의 대부분은 어느 정도 기장과 허리 수선을 감안하고 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허리와 기장은 수선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허벅지의 경우 바지를 제작할 때 있어서 착용자의 기본적인 사이즈에 맞춰서 패턴을 디자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디자인을 살리면서 수선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새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동네 세탁소에서 허벅지 수선을 잘 안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못된 수선은 바지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어정쩡하게 만들고, 그 바지는 옷장 속에서 계속 숙성되다가 후에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수선을 최소화하고, 나에게 잘 맞는 바지를 사고 싶다면 내 허벅지에 잘 맞는 바지를 구매하도록 하자.



바지로 사기 치자

다리가 짧기 때문에 바지를 아무리 좋은 것을 사도 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떤 바지를 입고, 밑단을 어떤 식으로 만들었으며, 다림질을 하였는가에 따라 전체적인 다리 실루엣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생겨난다. 쉽게 말해, 내 다리가 아무리 못생기고 짧아도 바지로 사기 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지로 구매 전에 두 가지, 구매 후에 두 가지만 생각해두면 바지로 사기 치는 건 어렵지 않다.


첫번째로, 1번에서 우린 '허벅지'를 기준으로 바지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잘 맞는' 바지를 사려면 허벅지 말고 맞춰야 할 요구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당신이 구매하려는 바지가 허벅지 아래의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지 확인해라.

이 깔끔한 바지를 보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지를 입었을 때 당신의 무릎과 종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지는 최대한 피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무릎이나 종아리에 걸리는 바지는 당신의 다리를 한층 더 짧고, 두껍게 보이도록 만든다.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바지가 아닌 살에 닿을 듯, 말 듯하게 떨어지는 바지를 구매하자.


한 가지 팁을 얹어주자면, 위의 그림처럼 카브라(턴업 수선)로 수선하거나, 밑단 뒷부분에 바지의 자투리 천을 덧대어 수선하면서 바지의 밑단에 무게감을 주자. 아래로 쏠리는 무게 덕분에 바지를 더욱 깔끔하게 떨어지게 만들어준다. 카브라의 경우 센스 있는 멋쟁이처럼 보일 것이고, 밑단 뒷부분에 자투리 천을 덧대어 수선할 경우 구두와의 마찰로 인해 줄어드는 바지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방지할 수 있다.


두번째로, 밑위가 살짝 긴 바지를 구매하자.

어렵다고? '배바지'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르신들 마냥 있는 힘껏 명치까지 올려 입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눈속임을 주자는 것이다.

배바지도 멋집니다. 명치까지 끌어 올리지만 마세요.

밑위가 긴 바지(통칭 하이웨이스트, 배바지)의 경우 보통 바지의 '허리'를 나의 배꼽 부분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디자인되어있다. 나를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번 쓱 훑고 지나가면서 내 바지의 실루엣을 보고(당신이 바지를 힘껏 올려 입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비율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가지를 고려해서 기성복의 바지를 샀다면, 이제 구매 후의 두 가지를 챙겨보자. 구매 후에 수선을 한다면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바지의 기장이다.

기장은 위의 그림처럼 복숭아뼈 위, 가운데, 아래로 나뉘게 되는데, 복숭아 뼈 위로 올라간다면 '경쾌함', 복숭아 뼈 가운데에 맞춰져 있다면 '깔끔함', 복숭아 뼈 아래로 떨어진다면 '단정함'이 두드러진다.


여름용 바지, 혹은 자신이 트렌디하거나 조금 젊은 느낌을 추구한다면 복숭아뼈 위로 기장 수선을 해도 괜찮다. 경쾌해 보이고 또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경쾌한 느낌. 바지부터 이미 여름바지다.

하지만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분들의 경우, 이렇게 수선을 하게 된다면 짧은 다리 더 짧아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출근했다가 바지가 너무 짧다고 상사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다.

언제나 평범하게 입을 수 있는 슬랙스의 기장을 찾는다면, 복숭아뼈 가운데에 기장을 맞춰 수선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바지는 이 기장으로 수선되어있다. 이 기장의 경우 어떤 구두를 신던 혹은 단화를 신던 신발과 바지 밑단이 닿을락 말락하게 위치한다.

구두에 닿을락 말락.

이 기장을 추천하는 이유 또 한 가지, 밑위를 보며 당신의 허리 위치를 의심하던 사람들도 신발의 위쪽에 깔끔하게 떨어진 밑단은 그들의 의심을 바로 걷어내게 만들어준다. 쉽게 말해, 이 깔끔한 기장은 위에 적힌 밑위 사기에 현실성을 덧붙여준다.


만약 당신이 클래식한 스타일의 바지를 선호하거나, 혹은 소속된 곳의 복장 규율이 엄격하다면 복숭아뼈 아랫부분까지 기장을 내려 수선 하기를 추천한다.

클래식한 바지의 기장. 브레이크가 걸려있다.

이 기장은 신발을 신을 경우 밑단이 신발과 만나 살짝 '구겨짐(브레이크)'을 선사하는데 클래식한 슈트 스타일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구겨짐'을 멋으로 생각하고 선호한다. 또한 복장 규율이 엄격할 경우, 이 기장은 당신의 복장에 '단정함'을 한껏 더해 줄 것이다.


기장을 줄일 때 또 한 가지 생각할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에 무엇을 신느냐이다. 평소 신는 신발이 발등이 높은 신발(정장 구두, 부츠 등)이라면, 전체적으로 조금 위에서 기장을 쳐도 된다. 하지만 발등이 낮은 신발(로퍼, 스니커즈 등)이라면 상기한 기준 모두가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러니 기장을 수선할 때는 꼭 자신이 자주 신는 신발, 혹은 바지를 입을 때 신을 신발을 생각하고 수선하자.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기장을 많이 수선했을 경우 바지 양 옆이 뜨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는 바지의 특성상 좁아 들어가기 전에 어정쩡한 부위를 잘라 수선했을 경우이다. (예) 발목 위, 종아리가 위치해야 하는 부분을 잘라서 수선했을 경우.) 이 경우 전문 수선집에 가서 수선을 맡기고 아예 새로운 바지를 만드는 수준으로 수선해야 한다. 또 이런 수선의 경우 처음에 원했던 바지의 핏이나 실루엣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기장이 너무 길 경우엔 구매를 포기하는 것이 통장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두 번째로 신경 써야 할 것은 '다림질'이다. 

적당히 굵지 않은 이쁜 다리가 모든 이의 로망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 바지통을 줄일 필요는 없다. 내가 처음에 '칼주름이 잡힌 바지'를 좋아한다고 써 놓은 것을 기억하는가? 나도 몸에 비해 허벅지와 종아리가 두꺼운 하체 비만형의 다리를 지니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얇아 보이기 위해 온갖 것을 다 했지만, 그 어떤 방법도 다림질을 넘어서진 못했다.


위의 두 바지의 밑단의 길이는 각 18cm이다. 보통 브랜드에서 파는 기본적인 슬랙스의 밑단 길이가17cm인 것에 비하면 넓지만 전혀 넓어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밑단이 넓고, 통이 크더라도 주름이 잘 다려진 바지라면 그 바지를 입은 나의 본래 다리보다 얇고 깔끔하게 뻗어 보인다. 그러니 다리에 딱 맞는 바지를 입고 짧거나 두꺼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허벅지와 타협하기보단, 잘 떨어지는 바지를 구매하고 다림질에 혼신의 힘을 다 하자. 자연스레 유려한 실루엣을 보여줄 것이다.


바지로 사기 치는 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나의 다리살에 닿을락 말락 한 통의 바지를 구매하자. 허벅지 맞는다고 무작정 구매하면 짧고 굵어 보인다.

조금 긴 밑위를 시도하자. 다리가 길어 보이는 사기 치기 좋다.

바지 기장은 갠취, 하지만 복숭아뼈 중간에 오는 기장을 추천한다.

바지를 샀으면 칼주름 세워서 다려 입어라. 얇고 유려한 실루엣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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