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결이 감탄스럽다. 붉은 융단으로 가려진, 메리 스튜어트를 만나기 전
과연 이자벨 위페르의 오페라가 어떻게 시작할 지 ... 리플렛도 보지 않았고 전일 공연에 관한 어떤 리뷰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나타났고 매끄러운 목선과 허리선, 무언가 매만지는 듯한 손끝이, 1층 중간 객석에서도 선명히 느껴진다.
총 세 대의 모니터-중앙, 양옆-에 자막이 시작되고 이어졌다. 아...프랑스어의 향연
긴 이야기가 될 것을, 아주 사적이고 단편적이며 조각같은 단어들이 공간을 부유하며 암시했다.
<메리 스튜어트>는 독특한 연출 방식을 취하고 있어 사실상 또 어떤 방식으로 관람해야 할 지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등을 밀어부치고 앞에선 상체를 끌어당기는, 빠르고 휘몰아치는 대사들을 다 읽어내며 줄거리를 잡을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몸짓과 어조, 흐름에 몸 전체를 맡겨야 했다.
그러면서 갈등, 슬픔, 무대 위 외로이 선 한 여인 그리고 이외의 다양한 인물들에 관해서, 시대와 사건들, 감흥, 절망, ...모든 것을 마음껏 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말들과 어떤 시간들 속에서 벌어진 특이한 사건, 그래서 이어진 또 다른 사건...
죽음을 맞이한 여왕의 여러 번의 심정적인 죽음까지
이건 어쩜, 며칠 밤을 두고도 모자란 긴 시를 줄줄 읊는 거 같으나 사실은 침묵일 수 있겠다.
순간들을, 어딘가에 고여버린 시간 속 침묵과 표정과 죽은 숨의 파장과 파형은 모두 무음이었으나 우리가 알게 하기 위해 무음 대신 유형의
이를테면 강렬한 음악과 변주들, 대체로 사람을 쫓아들며 해칠 것 같은 빠른 속도의 음향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가 천천히 영혼을 갈아 끼우듯 얼굴로 표현해낸 지옥, 비명, 급습하는 무너지는 효과음
반복되는 기묘한 동작들
영원할 것만 같고 점차 두려워졌다. 다시 생각해도 주변이 서늘하게 얼어온다.
이윽고 폭풍우같던 메리 스튜어트가 끝났고 같이 숨을 참고 보던 관객들은 뜨겁게 환호했고 내 바로 앞 한 분을 시작으로 모두가 일어섰다. 아, 달리듯 했던. 달리며 숨차며 슬프고 어둡고 어딘가 불안했고. 무언가 달려들고 발목을 잡을 것만 같았던, 끝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었던
메리, 그들의 이름은 모두 메리였고
내 비주를 고르고 있었죠
몇 문장들은 에코처럼 귓가를 계속 맴돌았고 서서히 작은 빛들이 그녀가 서 있던 주변을 희게 점점 없어지게 만드니까 마음은 서러워졌다.
<메리 스튜어트> 성남아트센터, 2일간 공연, 입장 전 카드를 받는다. Mary Said...
일요일 세 시 공연이 끝나고 배우는 끊이지 않는 박수와 감동의 목청들 속에 다섯 차례는 족히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커튼콜에서 정말 아름답고 귀여우셨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이 홍수같은 말들을 노래처럼 그대로 정말이지 자유로이 그대로, 그대로 해 낼 수 있는걸까. 경이로웠다.
여운이 길고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