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서 ‘개근 거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개근했는데, 거지라니. 매일 학교 가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마흔이 넘은 감성에선, 선뜻 공감이 안 갔다.
딸아이가 6학년이다. 열셋 사춘기가 올까 말까 하는 나이다. 딸아이가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다.
“엄마아빠, 다른 친구들은 주중에 학교 많이 빠지는데, 나는 왜 안 빠져?”
“응? 학교는 가야지.” 나는 눈치 없이 대답하고 말았다. 딸아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기사를 보고 이유를 알았다. 여행을 가는 경우, 학교에 빠진다. 제주도나 국내여행도 있겠지만, 해외여행이 대부분이다.
딸은 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빠, 우리는 왜 해외여행을 한 나라만 가?”
그러고 보니 나와 아내, 딸이 함께 간 해외여행이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 한 곳뿐이었다.
“멀리 가면 힘들잖아.” 나는 또 눈치 없이 대답하고 말았다. 꼰대인가..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다. 또래문화가 한창 형성돼 친구를 좋아하는 나이다. 1~2학년 때는 엄마아빠 손 꼭 붙잡고 놀이터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친구들하고 카톡해서 따로 만나 잘도 논다. 보기 좋다. 길거리 차만 조심하면 된다.
또래문화 속에서, 비교의식도 만들어진다. 누구는 어디로 이사 갔고, 누구는 뭘 자랑하고, 누구는 수업 빠지고 미국, 유럽, 베트남, 괌 갔다더라. 몇 달 전에 갔는데, 이번에 또 갔다더라. 시시콜콜 얘기한다. 부러움도 묻어난다. 누구에 비해 내가 못하면, 상처받는 게 아이 마음이다.
아파트에 사느냐 안 사느냐도 있지만, 해외여행은 자기들끼리 비교의식을 가지는 데 중요한 척도다. 딸아이가 볼 때 그래서, 주중 수업에 빠져야 하는 거다. 현장체험학습은 그래서 가야 하는 거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씁쓸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이다. 누가 만든 세상의 생각인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의식은 아닐 터.
지난달 처음으로 베트남에 가봤다. 그때 딸아이는 주중 네 날 동안 학교에 안 갔다. 처음 가본 베트남은 흥미로웠다. 물가 싸고 친절하고 여행이 편리했다. 베트남은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좋은 여행지인 듯싶다. 딸아이도 위안이 됐을까.
2024년 봄, 베트남 다낭 바다
'개근 거지'라는 말. 아이들은 우스개 소리로 말하지만, 상처가 되는 말이다. 해외여행으로 수업을 빠진 경험이 없는 아이와 부모가 직접 들었다면 더 상처다. 아이들이 무슨 죄일까.
어릴 적 해외여행은 중요하다. 여행은 견문이다. 견문은 한 인간의 풍부한 상징자본이 된다. 아이들 견문의 기회에서도 차이를 두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