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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n 17. 2024

술, 작은 깨달음

내 마음의 변화

좋은 후배가 연락했다.   


“형님, 제가 형 사는 동네로 놀러 한 번 가겠습니다.”

“그래, 좋지. 근데 강동이 오기 멀 텐데..”   


그래서 이른바 강동원정대가 꾸려졌다. 생각해 주는 게 고마웠다. 나를 응원한다고, 후배들이 시간 내 온다는 거다.   


후배 둘과 내가 단톡방에 들어갔다.   


화려하진 않지만 많이 가봤던 동네 맛 집 두 곳이 생각났다. 참치·생선 모둠회를 포함해 푸짐하게 음식이 나오는 동네식당, 매운 양념과 소금으로 맛나게 닭고기를 굽는 닭 숯불구잇집이다.   


고향 강동에 살다가 하남으로 이사가 살고 있는 친한 선배도 단톡방으로 불렀다. 네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기 딱 좋은 인원이었다.   


지금과 예전, 나중을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술도 술술 잘 들어갔다. 참치, 광어회와 함께 소맥을 마셨고, 두 번째 식당에서는 매콤한 닭 숯불구이와 생맥주를 마셨다. 이곳 주인장은 생맥주 장인이다. 연신 부드러운 거품을 따라줬다.   


그렇게 즐거운 모임은 12시 언저리에 끝이 나고 모두 인사했다.   


근 몇 주는 술을 거의 안 마셨다. 40대인지라 성인병 진단을 받은 부분도 있고, 체중 조절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술과 과식에서 멀어졌다. 술이 약해졌나..   


다음날 아침이 너무 괴로웠다. 숙취가 심했고, 머리가 아팠다. 어지러웠다. 울렁울렁 거리는 위장은 언제라도 위태로웠다. 술병이었다. 식도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왔지만 최선을 다해 다시 밀어내렸다. 심호흡을 하고 걸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연신 물을 마셨지만 소용없었다. 좀 걸으면 괜찮아지나 싶다가도, 앉으면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신물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정수기에서 텀블러로 물을 받았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 떨어지는 소리조차 듣기 싫었다. 괴로웠다. 술을 쉼 없이 마신 나의 행동을 후회했다. 적당히 마셨어야 하는 것을. 즐거움에 취해 술에 취해버렸다. 사람이 좋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1단계, 약국에 들렀다. 위장을 달래는 약을 도합 4개 먹었다. 약사님 감사합니다. 2단계, 콩나물국이다. 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가기 전에 슈퍼에 들렀다. 콩나물 한 봉지를 천백 원에 샀다. 콩나물이 나를 살릴 수 있겠지.   


“여보, 나 부탁이 있어. 나 죽을 거 같아. 콩나물국 좀 끓여줘..” 염치없이 부탁했다.   


아내는 처량한 듯, 비웃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콩나물국을 끓여줬다. 마침 냉장고에 있는 청양고추를 썰어 넣었다.   


나는 거기에 고춧가루를 더해 콩나물 한 대접을 다 마셨다. 찬밥도 조금 말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몸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자기 전에, 빈속이어서 컵라면을 하나 더 먹고 잤다. 제발..   


다행히, 아침이 개운했다. 술기운이 없어진 숨을 느꼈다. 술냄새가 없어졌다. 머리도 안 아팠고 위장도 더 이상 꿀렁이지 않았다.   


냉수 한 잔을 정수기에서 받았다. 떨어지는 물이 다시 보였다.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렸다. 시원하게 마시고 집을 나섰다. 햇살이 좋았고, 길이 예뻤다. 파릇한 나무이파리가 잘 보였다. 공기가 좋았다. 심호흡을 쭉 했다.


정수기와 물은 어제와 오늘 모두 그대로인데, 내 마음만 변했다.    


어제 괴로울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소리도 물모양조차 괴로웠다. 위장이 고통스러우니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걸으며 연신 올라오는 신물을 되삼켰었다. 물을 마셔도 효과는 없었다. 괜스레 물만 탓했다. 어리석게도. 내가 괴로우니 모든 게 괴로웠다. 세상이 미웠었다.   


내가 괴롭지 않으니, 주변이 다르게 보였다. 일체유심조,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괴로우면 세상이 괴롭고, 내가 평정하면 세상도 평정하다. 내 마음에 따라, 내가 있고 내가 없기도 하다.


과하게 마신 술로, 일상에서 작은 깨달음을 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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