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며
재작년에 운 좋게 회사 근처 소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 뒤로는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며 중도금을 내기 위해 저축하는 뿌듯함+부담으로 살고 있었다.
입주 날짜가 어느덧 성큼 다가왔지만 잔금 대출받고 가전제품 몇 개 사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보통 신축 아파트 분양이 끝나면 아파트 입주자들끼리 정보교환도 하고, 입주자 대표가 공지사항을 올리는 네이버 카페가 개설된다. 한참 중도금 납부일자가 다가올 때마다 생각이 많아져 종종 카페를 방문했었는데, 중도금 납부가 끝난 후는 관심이 없어 들어가지 않았다. 간만에 카페에 들어갔더니 사전점검 일자가 10월 초라는 공지가 떠 있었다. 주변에서 분양을 이미 경험했던 분들이 사전점검에 대해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카페 다른 게시글을 살펴보니, 사전점검 업체 몇 곳이 이미 제각기 홍보를 하고 있었다. 업체를 굳이 써야 하나 싶어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셀프로 충분하다는 동영상들도 꽤나 있었다.
지금껏 별생각 없이 아파트 입주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게으른 나에게 사전점검을 시작으로 아파트 입주라는 숙제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카페에 올라와있는 사전점검 업체들을 인터넷에서 검색부터 해봐야 하나. 홍보글들을 보니 선착순으로 댓글을 달면 할인해준다고 하는데 댓글부터 달아야 되나, 아니면 유튜브를 보며 셀프 사전점검 순서대로 공부부터 하고 결정해야 하나.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페 글을 보는 순간부터 업체에 맡기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주변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내가 아파트를 훑어본다고 하자를 발견해낼 자신이 없었다. 깨끗해 보이고 깔끔해 보이는 새 아파트 안을 보면 다 괜찮아 보여 하자가 있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다만 다른 옵션을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은 기껏 한 시간 정도 집을 점검받으면서 30만 원이나 쓰는 게 맞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문가에게 의뢰할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게 맞지만 비싸긴 비싸네. 앞으로 세금이나 가전제품 사면서 들어갈 돈도 꽤나 많을 텐데... 가격 때문에 약간의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카페에 올라와 있는 업체 중 한 곳을 골라 예약을 신청했다. 업체들이 카페에 써놓은 설명을 읽거나 업체 정보를 검색해 보면 좋았겠지만... 나의 귀차니즘으로는 그런 수고는 일절 할 수 없었고, 그냥 다른 사람들의 댓글이 유독 많았던 업체에 예약 댓글을 달았다.
예약 댓글을 달고 나니, 입주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지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가끔씩 입주를 상상하며 ‘오늘의 집’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이 했던 인테리어만 잠깐씩 구경한 게 전부였다. 이래선 안 돼. 아무리 소형 아파트라 할지라도 처음으로 억대라는 돈이 내 인생에서 등장하였고, 지금껏 은행 대출이라고는 전세대출밖에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도 계산해봐야 하고, 대출기간은 10년으로 할지, 20년으로 할 때의 장단점도 생각해보고, 원금 갚아나가는 속도와 그에 따라 앞으로의 나의 소비패턴과 저축액도 생각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럼 입주할 때 어떤 시공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보았다. 줄눈은 기존에 입주한 사람들이 꼭 하라고 하니 해야 하고, 그럼 다른 것들은? 탄성코트란 말은 처음 들어보긴 했는데 이것도 사람들이 하라고 하네. 이런 건 입주박람회 때 결정하는 건가? 막상 알아보는 것도 없으면서 마음만 부산해졌다.
게으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 없던 내가 앞으로의 아파트 입주 과정에서 해야 되는 새로운 경험, 쓸데없이 삽질할 일, 그럼으로써 느낀 일 등을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보려 한다. 이게 나의 흑역사가 될지, 나 스스로에게 감탄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 그건 입주 후에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