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 7

by 고훈

"뭐해?"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9시가 다되어 가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녀는 월요일이 휴무다. 실은 어제 오후에 온 카톡을 밤늦은 시간에 봤다.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답장을 하지 않았었다. 아마 그녀가 봤으면 숫자 1이 사라진 걸 보았을테지만 그녀에게서도 아무런 톡이 오지 않았다.


"좀전에 일어 났어요. 잘 주무셨어요?"

"응. 어제 톡을 늦게 봐서 잠깰까봐 안보냈어."

"그런 것 같았어요. 오늘 뭐해요?"

"별 계획없어."

"그럼 우리 산에 가요. 가까운 곳으로요."

"그래 그렇게 하자."


그녀가 11시까지 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출퇴근 때는 차를 쓰지 않는 그녀인데 쉬는 날에는 차를 쓴다. 운전도 나보다 더 잘한다. 늘 나더러 길치라고 놀리곤 한다. 나는 네비게이션을 보고도 길을 놓치곤 한다. 네비가 없던 예전에는 친구집을 찾아가다가도 못찾아서 그냥 되돌아오기도 했다. 옆에 앉은 아내가 이리저리 설명을 해도 못찾으면 내 성질에 못이겨 그냥 되돌아 와 버리는 일이 몇번인지 모른다.


"도착했어요"

그녀와 만나기로 한 동 주차장에 다다랐을 때 전화가 왔다. 그런데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111동 앞이에요."

"111동이 아니고 101동인데?"

"아~ 그리로 갈께요. 처음에 거기로 갔다가 이리 왔어요. 어딘지 알아요"


잠시 뒤 그녀의 차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그녀가 차창을 내렸다. 예쁜 얼굴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을 들어 주차장쪽을 가리키자 그녀의 차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거 넣을 수 있어요?"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계단에서 그녀가 과일이 담긴 타프통 하나와 물 두 팩을 보이며 말했다. 내가 메고 온 가방을 열어 과일통을 넣고 물은 그냥 하나씩 나누어 들었다.


"가요"하면서 그녀가 경쾌한 걸음을 걸으며 한발짝 앞서 갔다. 오늘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몇일 전 그녀가 일을 일찍 마친 올라가 본 작은 절이 있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봉우리가 3개인데 절은 제일 작은 봉우리 중턱에 있고 오늘 걷기로 한 곳은 제일 큰 봉우리인 주산이었다. 그녀는 산을 오르는 내내 나의 페이스에 맞추었다. 나는 땀도 흘리고 쌕쌕 거리는데도 그녀는 땀도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힘들죠? 그럼 쉬어 가요"


바다가 내려보이는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열고 과일 통을 열었다. 거기에는 사과와 배가 들어 있었는데 분홍색과 연두색으로 된 작은 플라스틱 포크가 두개 들어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분홍색 포크를 건내자 자기가 연두색을 쓰겠단다. 여자가 분홍색을 쓰야지 했더니 분홍색이 튼튼하단다. 포크를 보니 분홍색은 일자로 되어 있는데 연두색은 두 갈래로 나뉜 포크 모양이었다. 지영이 배를 하나 찍어 내게 내밀었다.


"유기농이라 껍질을 안깍았어요. 그냥 드시면 되요."

"언제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씻고 화장하고 바빴을 텐데."


맛있었다. 내가 가져온 뜨거운 물에 지영인 레몬차를 타고 나는 커피를 탔다. 지영이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체질이다.


"오늘 다른 계획 없었어?"

"음... 실은 친구 하나를 제쳤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날 쳐다봤다. 아까 왜 말을 하지 않았냐니까 그 친구는 다음에 봐도 된다고 했다.


"조금만 늦게 보냈으면 내가 밀렸겠네."

"아니요. 언제나 내겐 샘이 먼저에요."


그녀가 바다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바다를 보는 그녀의 눈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행복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날 우린 산 정상은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타고 걸었다. 두시간만에 되돌아 와 차를 타고 늦은 점심을 먹고는 근처 공원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오가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나 이러고 있으면 누군지 모르겠죠?"

"글쎄... 난 알겠는데."


내가 농담을 던지자 그녀가 "샘은 당연 알겠죠."했다. 그녀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그리고 걷기할 때 쓴다는 목까지 가리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실상 누가 봐도 알아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벤치 아래 앉아 그녀를 올려 보자 그녀가 그렇게 보지 말라면 나를 끌어 앉혔다. 왜냐고 물으니 쑥쓰럽단다.


3시가 다가오자 그녀가 아이들 돌아올 시간이라고 했다. 그녀가 차로 지하주차장까지 와 나를 내려 줬다. 내가 내려 뒷좌석에 있던 베낭을 메고 그녀쪽 창가에 다가서자 그녀가 차창을 내렸다. 그녀가 몸을 돌려 얼굴을 내밀었다.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조심히 가라고 하고 떠나는 그녀의 차를 보고 있었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며 빨간 브레이크등을 한번 보이더니 왼쪽으로 사라졌다. 여자들은 어떤 때 보면 참 용감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야? 타파통이 가방에 있네"

"괜찮아요. 다음에 만날 때 맛있는 거 넣어 오세요."

"응. 알았어. 조심해 들어가"

"사랑해요"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키쓰를 했다.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아내는 막내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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