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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06. 2022

시험이 무서운 아이 이야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제가 보기엔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대한 주눅만 해결하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봅니다. 좀 더 아이를 믿고 기다려 보십시오”

“그럼 선생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 아버지의 전화였다. 이처럼 대개 아버지가 아이의 공부에 관여하는 것은 거의 최후통첩이라고 봐야한다. 그래도 이 아버지는 나와 상담을 하는 것만으로도 양반이다. 대부분은 아이 엄마들에게 잘못을 돌리고 학원을 끊으라고 난리를 부리는 게 일반적이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고쳐지지 않았다. 녀석은 중3 겨울방학 때 와서 고1 2학기 중간고사까지 여전히 수학에서 좀처럼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학원 내에서는 같은 학년 중 그 어떤 아이보다도 앞서 있었다. 수업시간이든 학원 내 평가시험이든 같은 학년 중 최고였다. 그런데도 학교시험만 치면 실수를 연발했다. 


“시험을 잘 치려고 하지마라. 시험은 다만 지금까지의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행동하면 된다.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솔직한 것일 뿐 인거야.”


 녀석이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점수와 부모님의 기대 모든 것에서 자유스러워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얼마 전 이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계시지요?”

“어 그래, 어디냐?”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아니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저녁 5시쯤 와라.”


 이튿날 녀석이 왔다. 선물이라고 종이 백에서 꺼내 건네는 작은 박스에는 무선 이어폰이 들어 있었다. 


“이거 꽤 비싼 거 아니냐?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이 비싼 걸 사왔어?”

“저 요즘 알바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사실 군 제대하고 자퇴를 했습니다.”

“뭐라고? 아니 왜?”

“적성에도 안 맞고 몸이 좀 안 좋아서…….”


  녀석이 말끝을 흐렸다.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건 그 일 때문인 듯싶었다. 조심스레 내가 말을 꺼냈다.


“정신과적 문제냐?”

“예. 샘.”

“또 그런 거야?”

“네……. 우울증이 심해 약을 먹은 지 좀 됐습니다”

“그래서 몸이 많이 불었구나.”

“네, 많이 빠진 겁니다.”


 녀석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술은 정신과 치료에는 금기니 밥을 먹기로 했다. 사실 저녁에 오라고 한 것은 술 한잔하면서 녀석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제발한 거야?”

“그런 것도 있고……. 하여간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행이다. 너무 마음을 쓰지 마라. 명상도 좀하지 그래?”

“하고 있습니다. 예전 선생님과 공부할 때 많이 좋아졌었는데…….”

“요즘은 약 먹고 하면 괜찮자나. 꾸준히 치료하고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랑 대화를 많이 하도록 해라.”

“네, 샘. 그래서 샘을 찾아 왔습니다.”


 녀석은 뭐가 문제일까? 예전에 내가 느낀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 보였다. 아들에게 거는 기대, 그것이 아이들에게 많은 강박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많았다.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가 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부모들이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저 아이가 나약해서 그렇다고 더 다그친다. 특히 남자아이일 경우가 더 그렇다. 부모의 기대, 우리나라 부모들은 그것이 더 심하다.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빙의하는 경우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겨울방학이 왔다. 2학년에 들어서는 것이다. 녀석은 이과로 진학을 했다. 역시 학원 내 2학년 중에서는 단연 탑이었다. 몇 개의 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아이들이다. 학교 수준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였다. 고 2에는 특목고 학생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방학 때는 하드 트레이닝을 한다. 모든 아이들이 이 시간에 가장 많이 발전한다. 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가 되었다. 이과 공부는 쉽지 않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귀감은 눈에서 보고 들은 선배들의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 같은 공간에서 7등급의 선배가 1등급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정말 큰 동기부여인 것이다. 아,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불가능은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반드시 해낼 거라는 마음을 그런 선배들을 보고 함께 말하고 또 그 선배들에게서 문제 풀이를 듣고 하는 것이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결과가 나왔다. 전교 1등이었다. 물론 수학만이다. 녀석의 기쁨이야 물론 커겠지만 내가 받은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녀석은 그 큰 짐을 벗고 날아 오른 것이다. 녀석을 믿어준 아버지에게도 감사했다. 결국 그것은 아버지의 나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고 또 나는 나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면 된다. 마음의 위축도 열심히 하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 어쩌면 최근에 찾아온 것도 녀석은 그때의 기운을 받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날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잊어라. 문제는 모두 네 속에 있다. 모든 건 너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답은 결국 네 가슴속에 있다는 거다.”


 나는 그가 잘 극복하리라 믿는다.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되고 육체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을 가져온다. 일어서라. 그리고 그때처럼 날아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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