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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07. 2022

동수야, 기죽지 마라

 그 녀석이 처음 내게 왔을 때가 중3이었다. 누나가 끌고 왔다고 해야 할까? 그때 그 아이는 천방지축이었다. 고민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밝기만 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는 조금은 진지해졌다. 고등학생이 되고 그 진지함 속에서도 타고난 그의 천성인 밝음은 늘 빛났다. 유달리 여자애들을 좋아하고 인기가 많았던 그 아이는 여자 친구를 내게 자랑하기도 했다. 공부하라면 늘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늘 밝던 얼굴에 수심이 쌓여 가는 게 보였다. 불안하고 초조해하고 조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학입시라는 걸 동안에는 무심히 남의 일처럼 보다가 막상 그것이 그 앞에 닥쳤을 때 그 아이는 거의 멘붕 상태가 된 것이다.


‘이게 뭐지?’


 그는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준비가 안 된 자신을 보며 힘들어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어느새 그 밝던 얼굴이 굳어져 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모두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던 걸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남들이 말하는 삼류대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


“기죽지 마라. 지금부터 헤쳐 나가면 돼. 한 단계씩 올라가는 거야.”

“ …… ”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어. 문제는 너의 의지야”


 나의 조언대로 그 아이는 그때부터 편입을 준비했다. 늦게 눈을 뜬 것이다. 드디어 소위 말하는 인 서울(In Seoul)을 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유학을 준비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날, 그가 기숙사를 찾아가던 길에 카톡으로 내게 보낸 노을 사진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시련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학교를 졸업하고도 쉽게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 고뇌하던 모습이 안쓰러웠다.


“너무 큰 곳만 바라보지 마라. 작은 곳에 가서 네가 그걸 크게 키워주면 되지.”


 어느 날 그는 취직을 했다. 작은 외국계 회사라고 멋쩍어했다. 내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그가 말했다.


 “제가 크게 키우겠습니다. 선생님.”


 그날 부딪힌 소주잔은 미래를 향한 종소리 같았다. 어느 날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가져왔다. 그때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집안 조카의 결혼식과 맞물려서였다. 그 아이는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아마도 조금 서운 했을 것이다. 얼마 후 그가 찾아왔을 때 비로소 축하의 잔을 들었다. 


 세월은 흘러 그 녀석이 아이 아빠가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 이름이 뭐냐?”

“유준입니다.”

“널 꼭 빼닮았구나”


 천방지축 중학생이 어느새 커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은사를 찾아뵈었을 때의 선생님의 마음도 이러했겠구나 하는 감회가 떠올랐다. 언젠가 명절이 되어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다.


“애들이 좀 왔다 갔습니까?”

“아니야......”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셨다. 어떤 마음이신지 헤아릴 수 있었다.


“신선생아”

“예 선생님”

“선생은 제자가 여럿 있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야. 나는 너 하나로도 충분히 족하다.”


 그 말씀에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또 선생님의 심중을 알 것만 같았다.


“내 장례식에 사람을 부를 때 10명을 불러도 너는 그 안에 있을 것이고, 설사 5명만 불러도 너는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선생님”


 그때 나는 실상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씀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제자들의 왕래와 연락이 하나 둘 끊어지면서 그때의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선생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외로운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자들의 방문과 전화를 기다리듯이 아마도 선생님 또한 그러하시리라. 지나간 추억을 떠 올리시며 하늘을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나는 종종 그 녀석의 끝없었던 도전의 시간을 그의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그가 겪은 많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고한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삶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도 이제 또 다른 출발을 한 것뿐이란 걸 알아야 한다. 단지 이제 연극에서의 1막이 끝났을 뿐이다. 이제 또 새로운 막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의 그 의지라면 못할 게 없을 것이다.


 철없던 10대 초반을 거쳐 입시를 준비하는 힘든 후반을 넘고 또 고뇌하던 20대를 거쳐 서른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이야기는 내가 자주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10대에 꿈이 없고 도전정신이 없으면 힘들어진다. 기죽지 않고 살려면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꿈을 갖고 그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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