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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19. 2022

우리 엄마 얘기 다신 하지 말아 주세요



 

 잘 생긴 사내 녀석이 아버지와 학원에 왔다. 보기에도 똑똑하게 생겼었다. 밝았고 씩씩하고 예의가 바른 녀석이었다. 테스트를 보고 상반인 A반에 배치가 되었다. 당시에 각 학교 전교 1등은 우리 학원에 있었는데 주변에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 생기면서 이 아이들이 빠져나갔다. 학원에 특명을 내렸다. 남은 아이 중에 다시 전교 1등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똘똘 뭉쳐 다시금 전교 1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또 빠져나갔다. 나는 아이들이 전교 1등을 하면 학부모들에게 떡이나 치킨 피자를 돌리라고 한다. 그것은 동안에 수고한 선생님과 학원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전교 1등 아이들을 장학금을 주며 빼 가는 것이었다. 나는 장학금은커녕 1등 만들었다고 생색이나 내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전교 1등은 한다는 것은 물론 아이가 우수한 것도 있지만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그만큼 노력한 것이다. 그 노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고마움을 표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장학금을 주고 빼가는 것은 그저 상술일 뿐이다. 거기에 일부 학부모들이 끌려가고 있었다. 녀석이 전교 1등에 올랐다. 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너도 저쪽에서 오라면 갈 거냐?”

“쌤, 저 남잡니다. 저는 안 갑니다. 그건 배신 아닙니까?”


 녀석은 정말로 꿋꿋이 학원에 남았다. 특목고 진학을 준비했다. 기대한 대로 특목고에 진학을 했다. 문제가 생겼다. 겨울 방학부터 아이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전화를 안 받았다. 다행히 동생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오빠는 왜 학원을 안 오는 거야? 아빠도 전화를 안 받으시고 뭔 일 있어?”


 아이의 말에 따르면 오빠는 아빠가 서울 고모 집에 보내 서울 대치동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화가 났다. 실컷 고생해서 만들어 놨더니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학원을 끊어 버리다니.

학교가 부산이니 방학이 끝나면 다시 오겠지 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도 오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되어도 오지 않았다. 의리를 지키려던 아이였다. 아마도 문제는 아버지 같았다.

 여름 방학이 중반쯤 지났을 때 녀석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이 좀 다시 지도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전화를 받고는 사실 처음엔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성적이 너무 떨어졌고 아이가 내게서 배우겠다고 떼를 쓴다니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아이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아직 회비 낸 것이 남아 있으니 마치고 데리고 온단다.


“아이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서울에…….”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이한테 맞지도 않은 학원에 맡겨두고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깟 학원비가 아깝습니까? 당장 내려오라고 하십시오”


 단호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화가 치밀었다. 손이고 몸이 떨렸다.

며칠 뒤 아이와 아버지가 왔다. 왜 이제 왔느냐 했더니 며칠 전에 왔더니 학원 문이 잠겼더란다. 아마도 학원 여름캠프를 갔을 때 왔던 거 같았다. 성적표를 보니 전교 석차가 끝에서 여섯 번째였다. 뒤에 다섯 명 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아무리 특목고라고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학 때는 서울 대치동에서 학기 중에는 학교 부근에서 그 학교 전문 그룹과외를 했다고 한다.


“독 과외를 해야 합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맡아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벌써 방학이 절반이 넘어서 있었다.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매일 와서 자습을 하고 내가 주는 프린트를 풀어 제출을 했다. 녀석에게 생기가 돌았다. 다시금 공부하는 맛을 느낀 것이었다. 늘 하듯이 1:1이지만 묻고 답하는 토론식 강의에 푹 빠져 들었다.


“그 문구는 왜 제시된 것 같아?”

“이유 없이 준거냐?”

“뭘 추론하라는 거야?”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녀석은 머리를 회전시킨다. 방학이 끝나갈 때쯤 녀석이 어느 정도 예전의 실력으로 돌아온 듯했다.


“해볼 만하냐?”

“예 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됐어. 아버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맘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갈 길이 멀다.”

“예”


 그래도 아직 멀었다. 개학을 하면 주말밖에 시간이 없다. 그 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그래서 주말에만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대개는 주중 하루 주말 하루의 시간으로 짜여진다. 그래야 예복습의 시간이 알맞게 주어지게 된다. 주말 반은 이틀 연속 수업을 하고 5일간을 독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주중반보다 효과가 떨어진다. 일주 두 번의 수업 중 수업하는 날 사이가 이틀 또는 3일의 간격을 가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중등부와는 달리 고등부는 하루 두 시간 일주 두 번의 시간표가 가장 효율적이다. 중등부는 주 세 번을 하고 한 타임의 시간이 80분 정도이면 적당하다. 그래서 방학 중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이 절실했다. 어렵사리 주말 반 수업을 진행했다. 성적은 조금씩 올라왔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되었다. 기다리던 방학이 된 것이다. 일제히 학원이 풀가동된다. 고등부는 더 심했다.


“체력 조절해라.”

“예, 신경 쓰고 있습니다.”

“공부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알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똑같은 차가 매일 학원 길 건너편에서 학원을 주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날 내가 그 차로 갔다. 창문을 두드리니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 웬 여자분이었다.


“혹시 학원에 볼일이 있는 겁니까?”

“저……. 누구 엄마입니다.”


 싸한 느낌을 받았다. 학원이 파하는 시간에 올라오시라 하고 돌아왔다. 내려다보니 차는 떠나고 없었다. 그날 밤늦게 그분이 찾아왔다.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학원 건 너에서 아이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랬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에게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녀석에게 조용히 말을 했다.


“실은 어머니가 왔다 갔다. 차에서 너희들을 보고 계셨다고 한다”


 내 얘기를 듣는 아이의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아이가 무섭게 변했다. 아차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여자가 왜요? 앞으로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래도 어머니자나”

“그런 엄마 필요 없습니다. 우린 없어도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엄마 얘기 다신 하지 말아 주세요. 여동생한테는 절대로 아무 말씀 마시고요”


 아픔이 있었구나. 엄마가 없다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큰 상처를 안고 그렇게 명랑하고 의젓이 살고 있었구나. 어쩌면 슬픔과 분노를 삭이기 위해 더 명랑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은 금방 제자리를 찾았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가 한 번 더 올라왔을 때 아들의 마음을 전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2학년 첫 시험이 시작되었다.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 수학이 가장 관건이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내가 더 초조했다.

결과가 나왔다. 학원에 나타난 녀석의 얼굴에 만연의 미소가 흘렸다.


“샘, 저 1등입니다.”

“그래? 그게 정말이냐?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며칠 뒤 녀석이 성적표를 두 장 들고 왔다. 하나는 꼴찌에 가깝던 성적표고 하나는 전교 1등의 성적표였다. 녀석이 말했다.


“샘 이거 복사해서 광고에 쓰셔도 됩니다.”

“어……. 그래. 그렇지만 샘은 그런 거 안 해도 된다.”


 녀석은 그때부터 줄곧 1등을 했다. 지금은 공인회계사가 되었고 변호사 와이프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가슴속에 응어리를 안고 최선을 다한 녀석에게 찬사를 보낸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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