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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20. 2022

선생님 우리 아이 다시 받아줄 수 있나요




 길을 걷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예전 학부모가 오고 있었다. 이럴 때가 좀 난감하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쳤다. 그때였다. 그 어머니가 날 불렀다.


“저……. 선생님”

“네? 무슨……. 일이신지?”

“선생님,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우리 아이 다시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이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좀……. 성적이 많이 안 좋습니다. 아이가 샘한테 가겠다는데 송구해서…….”


 아이가 다시 오고 싶다는데 어머니의 지은 죄로 염치가 없어서 못 보내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쁘고 명랑하고 똑똑한 여자아이였다.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난감했던 내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학원에 한번 들리라고 하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1 예비 반인 중3 아이들 중 실제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몇 명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방학 때부터 서울 대치동 학원으로 간 아이, 3월이 되자 학원을 옮겨 진을 빼는 아이 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신학기를 대비한 시점에서 빠져나갔다. ○○이는 그중 하나였다. 이럴 때는 묘한 배신감에 울화가 치민다. 실컷 가르쳐 놓으면 다른 데로 가버리는 거다.  

다음날 아이가 왔다.


“잘 지냈어?”

“샘……. 보고 싶었어요.”

“됐어 임마. 성적이나 말해봐”

“그게…….”


녀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학원을 4번이나 바꿨다고 한다. 대개 사오 개월 만에 학원을 바꿨다고 한다.  


“왜 그렇게 적응을 못한 거야?”

“모르겠어요. 다 맘에 안 들었어요.”

“근데 왜 이제 왔어”

“엄마가……. 엄마가 샘이 안 받아줄 거라고 해서요”


그때가 고2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무렵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녀석이 들어갈 만한 반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실력이 너무 낮았다. 독 과외를 추천했지만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대개 부모님들이 생각하기엔 독 과외는 선생이 돈 벌려고 하는 줄 안다. 그러나 선생이나 학원 입장에서는 독 과외를 선호하지 않는다. 똑같은 타임 배정을 할 경우 독 과외보다 팀 반의 수입이 더 많다. 그러니 학원에서는 독 과외를 잘 배정하지 않는다. 학부모는 회비 부담 때문에 학원에서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독 과외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팀 반에서 효과를 보는 아이들은 절반도 안 된다. 대개는 구성원 깔아주기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학원에 보내니 괜찮겠지, 잘하겠지 하고 안도하고 있는다. 안타까운 교실 현실이다. 학원이 이러니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그걸 어느 정도라도 만회할 수 있는 게 토론식 수업이었다. 나는 6~8명을 정원으로 하는 토론식 수업에서 많은 효과를 보았다. 아이들도 이런 수업을 좋아했다.


 어쨌거나 녀석이 들어갈 반을 정해줘야 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랑 팀을 만들면 되겠다. △△는 특목고이고 성적이 우수하지만 중학교 때 둘이 친했었고 그 당시는 성적이 비슷해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 아버지를 설득하는 거였다. 현재 둘의 실력 차가 있고 독 과외를 고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를 설득했다. 장점을 부각했다. 아이는 오케이를 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아버님, 절대 △△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훨씬 나을 겁니다. 제 판단을 믿어보십시오. 제가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아버지도 승낙을 했다. 한 달 간은 주말 반으로 했다. 곧 방학이 오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 생각이 들어맞았다. 둘은 예전처럼 죽이 잘 맞았다. 내 수업 방식대로 진행을 하고 자습시간에는 △△이가 ○○이에게 설명을 해주는 모습이 보기에 예뻤다. 또 △△도 예전에 ○○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좋은 귀감이 되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 고3이 되자 녀석도 예전의 궤도로 들어왔다.

녀석은 Y대 원주캠퍼스 법대로 가고 △△는 중경외시의 K대 경영학과로 전액 장학생이 되었다.


 성적에 차이가 나는 두 아이도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좋은 학습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때는 잘하는 아이 쪽에서는 이기심을 버려야 하고 못하는 아이 쪽에서는 시기심과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둘의 신뢰관계를 잘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게 잘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그 팀은 와해될 수밖에 없다.

 다른 팀의 이야기다. 남학생 둘이 한 팀이 되었다. 하나는 기초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독 과외를 하던 두 명을 합쳤었는데 두어 달이 지나자 조금 나은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얘가 수준이 너무 안 맞아 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따로 1:1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국은 녀석의 팀은 와해되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수능 결과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잘한다는 아이가 3등급을 받은 반면에 못하던 아이가 1등급을 받은 것이다.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런 것이 신의 장난인 걸까?



신영호 作/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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