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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23. 2022

선생님 건강은 제가 책임질 게요





“신 선생, 우리 학원에 반하나 맡아줄 수 없겠나?”

“아, 실장님.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 오늘 한 타임만 어떻게 맡아주면 안 될까?”


 잘 아는 모 입시학원의 실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로 보나 톤으로 보나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위급하다는 거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고2 이과 예비 반 한 팀에서 자꾸만 선생님을 보이콧한다는 거였다. 벌써 세 명의 선생님이 아이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는 것이었다. 모 입시학원의 하모 선생, 여모 선생 그리고 박모 선생이 모두 퇴짜를 맞았다는 거였다. 그런 반이면 더더구나 맡기가 귀찮은 대상이다. 기피대상 A급인 셈이다. 그렇다고 실장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얼마나 어렵게 부탁을 하는 건지 알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전화를 해 시간표를 조절했다. 달려가니 정말 무슨 구세주를 맞이하듯 반가이 맞이했다. 거기서 직접 들으니 더 가관이었다. 이런 녀석들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어차피 나야 오늘 하루 땜빵을 하는 것이니 어디 골탕을 한번 먹여보기로 했다. 우선 10문제를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너희들이 뭐가 그리 대단한 놈들이라고 선생님들을 퇴짜를 놓고 하는 거야? 나는 너희들 같은 사고를 가진 애들은 애초에 가르치기가 싫다. 오늘 내가 온건 너희들을 맡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희가 선생님을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나 또한 내 학생들을 선택할 권리도 있는 거야. 안 그래? 다시 말하지만 내가 오늘 온건 실장님의 부탁을 거절 못해서야. 또 한 가지 너희들 낯짝을 보고 싶어서야.”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런 아이들이 선생을 보이콧을 한다고? 뭔가 내막이 있는 듯했다.


“너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희들 실력을 한번 보자. 우선 40분을 줄 테니 내가 주는 10문제를 풀어봐라. 내 결정은 그다음이다.”


그렇게 테스트가 끝났다. 10문항 중 2문항을 맞춘 아이가 최고 점수였다. 나머지 5명은 하나도 맞춘 게 없었다. 문제 하나하나에 대한 논점과 접근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강의를 마쳤다.


교무실로 와 다음 수업 때문에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실장님이 잠시 5분만 기다려 달랬다.


“어 역시 신 선생이야. 아이들 반응이 좋아.”

“실장님 그래도 저는 쟤네들 안 맡을 겁니다. 저 가겠습니다”


 그날 밤 막 집에 도착했을 때 그 학원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까 학원에서부터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은근히 불쾌했다. 모 단과입시학원 원장이었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내가 만날 일이 없으니 그만 가시라고 했다. 내가 올 때까지 집 아래 주점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양반 고집은 알아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시간이 새벽 2시가 넘어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내려갔더니 역시나 안 가고 버티고 있었다.


“어, 신 선생. 내려올 줄 알았어. 나 좀 살려주라. 우리 학원 존폐가 달렸어.”

“아니 그런 반 버리면 되지 무슨 학원 존폐까지 입니까? 일단 가십시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실 것 같아서 내려온 겁니다. 내일 아니 나중 낮에 얘기하시지요”

“알았어. 그럼 나중에 얘기하자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수업료의 90%를 다 주겠다는 거였다. 원래 8명 정원이 다 찼었는데 시끄러운 와중에 빠졌지만 걔들도 다시 올 거라 확신했다. 그럼 8명 정원이 차는 거니 강의료는 보통 내가 받는 것의 2배를 훌쩍 넘었다. 맡기로 했다. 돈보다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도대체 어떤 아이들 이길래 이 학원 전체가 이런 반응을 하는 걸까?


 학원이 그렇게 반응을 하는 이유가 곧 밝혀졌다. 강의를 두 번 하고 난 뒤 학부모들과의 점심자리가 마련되었다. 거기 리더가 모 대학 수학교수의 부인이었다. 아하, 여태껏 여기가 보이콧의 진원지구나 싶었다.


“아이 아버지가 선생님 강의를 아주 만족하셔 합니다.”


 불쾌했다. 대학교 수학교수면 수학교수지 무슨 아이 학원 수업내용을 가지고 저런 반응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점심자리가 편하지 못했다.


“선생님,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너그럽게 봐주시고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는 그렇게 만났다. 처음 테스트에서 두 문제를 맞힌 녀석이다. 성격이 좋았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내가 더 재미를 붙였다. 곧 각 학교 전교 1등을 찍는 아이들이 생겼다. 학원에서 반을 하나 더 펼쳐 달라는 부탁을 했다. 거절했다. 계속해서 들어오려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결국 학부모들과의 상의 끝에 10명이 정원이 되었다. 그러다 12명이 되었다. 어느 날 갔더니 교실 두 개를 틔어 놓았다. 겨울 방학이 되니 16명이 되었다. 회비는 그대로인데 정원은 두 배가 되다니 학원과 학부모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학원과 이견이 생겼다. 내가 가져가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과감히 내가 깨 버렸다. 그럼 조건에 맞는 강사 데려다 쓰라. 실장님은 펄쩍 뛰었지만 털고 나왔다.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주변에 아는 학원에서 교실을 빌려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다. 절반인 8명이 왔다. 그 리더는 당연 ○○이었다. 다음 달 나머지 8명이 다 왔다. 돌아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막을 수가 없었다. 고 3들이니 난감했다. 이과 반들이라 나 혼자 감당하는 것도 벅찼다. 당시 부산 최고로 알려진 박모 원장님에게 몇 개의 파트를 맡아 달라 부탁을 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보름이 돼서 아이들이 그 수업 못 듣겠다고 안 가겠다고 했다.


“이놈들아. 그분이 지금 부산 최고야. 뭐가 문제야?”

“예 대단하시던데요. 풀이집의 콤마(,)까지 똑 같이 하시던데요. 그럼 우리가 답지 보고 공부하지 수업은 왜 듣습니까?”


아이들은 나와의 수업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풀이집 풀이를 과감히 곱표(가위표 ×)를 치고 우리식의 풀이를 연구했다. 그런 수업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주입식 강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한 달이 지나자 아이들 모두가 그 수업을 안 듣겠다고 수강을 포기한단다. 난감했다. 그러면 진도를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또 학원과 마찰이 있었다. 우리 때문에 자기 학원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고 했다. 결국 그 학원에서도 수업을 계속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 당시 남천동에 있는 친구 학원에서 고3을 한 반 가르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거기까지 오는 것은 무리인 얘들이 많았다. 교실 여분은 충분했다. 친구가 오케이를 했다. 녀석들은 거기까지 모두 따라왔다.


“도대체 이것들 미친놈들 아니야? 누구누구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돌아가. 가까운 학원에 다녀. 고3이 시간을 아껴야지?”

“샘, 그건 다 부모님들과 얘기가 되었습니다. 네 명씩 조를 짜서 부모님들이 데려다주거나 택시를 타고 오기로 했어요.”


 그렇게 여름방학이 왔다. 지척에 광안리 해수욕장이 있었지만 우리는 바닷물에 발도 담가보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거리가 먼 아이들이 결국 빠지고 8명이 남았다. 기존의 남천동 학원의 아이들은 10명의 정원이 한 명도 탈락하지 않고 입시를 맞았다.

8명 전원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10명 중에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두 명도 Y대에 합격했다. 그중 한 명은 이듬해 다시 부산 B대의 사범대로 학교를 옮겼다. 나중에 임용되기 전 우리 학원의 과학강사를 잠시 맡기도 했다. 정말 파란만장한 2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이는 서울대 의대를 갔다.  


“쌤, 선생님 건강은 제가 책임질게요.”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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