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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24. 2022

선생님 빨리 나으세요



 어느 날 한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대 의대를 간 ○○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의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당연히 아이를 맡아 주셨으면 하는 얘기였다. 나중에 들으니 ○○이가 대학 합격 후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갔었는데 중학교 때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녀석이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물으시더란다.


“제가 ‘수학 샘을 잘 만나서요’라고 했죠. 잘했죠?”

“어 잘했다.”


 그때 큰 아이를 가르치게 되었다. 고 2였다. 그런데 거기 중3 동생이 있었다. 그렇게 이 녀석과는 인연이 닿았다.


집 구조가 아파트를 들어가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 왼쪽에 아이들 방이 있었다.


“형 수업하러 올 때 질문받아 줄 테니 모르는 건 체크해 둬라.”


 이 말 하나로 녀석과 엮이게 되었다. 어느 날 큰 녀석과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문제를 들고 불쑥 들어왔다. ‘형 설명 중이니 조금 있다가 가르쳐 줄게 방에 가 있어’라고 했는데 어깨너머로 보고 있었다. 형에게 문제 하나를 내주고 돌아서 뭐냐고 물었더니 샘 잠깐만요 했다.


“쌤, 저 문제 답이 땡땡 아니에요”

“응?”


 형은 아직 낑낑대고 풀고 있는데 녀석이 암산으로 답을 푼 것이다. 그날로부터 내가 녀석의 별명을‘몬스터’라고 불렀다. 녀석은 공식 유도과정까지 술술 말하는 게 아닌가?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했다. 작은 녀석을 너무 띄워 주지 마란다. 너무 건방이 늘어 형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한날 앉혀놓고 얘길 했더니 형에게 조심하겠다고 했다. 심성은 착한 녀석이었다.

 이듬해 형은 동국대에 붙었다. 고1 겨울방학부터 이제 녀석과의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맡고 있는 모든 수업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다니던 입시학원이야 내가 빠지면 이때다 하고 자리를 꿰찰 멤버가 수두룩하지만 오후에 있는 작은 소수정예 단과학원과 개인과외를 하던 아이들이 문제였다. 일부를 믿을 수 있는 후배에게 부탁을 했다.‘몬스터’도 그 후배에게 맡겼다. 수술을 받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몬스터의 가족이 모두 병문안을 왔다.


“쌤, 빨리 나아서 저 좀 가르쳐 주세요.”


 아이가 후배랑 맞지 않는다고 수업을 안 듣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내가 퇴원을 하는 것도 언제일지 모르고 퇴원을 해도 당분간 수업을 하지 못할 거 같다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결국 한 달 후 후배와의 수업을 끊었다고 했다. 선배를 소개해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수업을 세 번 받고는 안 한다고 한단다.

내가 45일 만에 퇴원을 하고 집에서 요양을 할 때 또 온 가족이 찾아왔다.


“쌤……. 빨리 나아서 저 좀 가르쳐 주세요. 힘들어요.”

“당분간 내가 가는 건 무리니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전화를 해. 전화로 가르쳐 줄게”


 그렇게 몇 주간 녀석과 전화로 공부를 했다. 워낙 똑똑한 녀석이다 보니 전화로 논점을 짚어줘도 금방 캐치를 했다.


“그건 뭘 끄집어내라는 걸까?”
 “아 쌤, 잠깐만요. 아…….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식이었다. 툭 던지면 바로 받아먹는 마치 서울대 의대를 간 ○○를 보는 것 같았다. 녀석 때문에 병상에서 빨리 일어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녀석의 등쌀에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황에서 움직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일가족이 또 집으로 왔다.


“쌤, 이거 보세요”


방학이라 내려온 큰 녀석이 내미는 건 작은놈 ‘몬스터’의 성적표였다. 이과에서 전교 1등을 한 것이었다. 녀석이 으쓱하며 어깨를 올려 보였다.


“잘했다. 축하한다.”

“쌤 이거, 복사해뒀다가 학원 광고에 쓰세요”

“하하하, 안 해도 돼. 녀석아”     


 큰 녀석이 제안을 했다. 어쩌면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왠지 상술 같아서였다. 그러나 나중에 광고 하단에 전교 1등을 한 아이들과 명문대 진학한 아이들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사람의 일이라는 건 참 알 길이 없다.


 수술 후 제일 먼저 한 게 ‘몬스터’의 과외였다. 정말 녀석의 나에 대한 사랑은 못 말릴 수준이었다. 몸이 제대로 회복이 안 돼 진땀을 흘리며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런 것이 회복을 빨리할 수 있게 만든 건지도 몰랐다. 방학 때는 근무하던 입시학원에 다시 들어가 몇 개의 반을 맡았다. 재수생반은 이미 다른 선생님이 대타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내가 받아오는 건 무리였다. 결국 방학 동안에 펼쳐지는 재학생반을 맡게 된 것이다. 사람이 간사하다던가? 내가 수술을 받기 전에는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경쟁을 벌리던 원장들이 수술 후에는 반응이 냉랭했다.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몬스터’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합격을 했다. 또 온 가족이 집으로 왔다.


“수고했어”

“다 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래 고맙다. 이놈아”


 어머니 아버지의 기쁨도 눈에 확연히 보였다. 그것이 자식 키운 보람일까? 모든 건 뿌린 대로 거둔다.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언젠가 그 목표에 도달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가르치는 보람은 선생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다. 수고했다. 너의 앞날에 거칠 것이 없기를 기원한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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