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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y 25. 2022

기자가 된 아이





“○○이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여?”

“○○이 도로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어요?”

“뭐야? 왜 안 말렸어?”


학원에서 여름방학이면 실시하는 담력훈련에서 한 녀석이 친구들의 놀림에 화나서 혼자서 오던 길을 되돌아 산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산 하나를 이쪽에서 올라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훈련이다. 출발하면서 내려오는 시간을 계산해 반대편에 봉고차를 대기시켰다가 학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산으로 올랐다. 지프차였기 때문에 별무리는 없었다. 산등성이에 다다르니 저만치 녀석이 걸어가고 있었다. 차에 태웠다.


“아…….원장님 왜 오셨어요.”

“야 이놈아, 아무리 빡쳐도 그렇지 단체가 움직이는데 이탈하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그때가 중3이었을 거다. 녀석은 괜찮은 머리를 가진 것으로 보였는데 쉽사리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상담을 해보니 태권도 도장이 문제인 것으로 느껴졌다.


“중3이 태권도를 하는 이유가 뭐야? 선수할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나중에 태권도 도장 차릴 거야?”

“그것도 아니고……. 그냥 관장님과의 의리로 봐야겠죠.”

“의리? 그래 좋다. 언제까지 할 건데?”

“모르겠어요”

“내 생각엔 이제 곧 내일모레면 고등학생이야. 공부해야지.”

“...... ‘

“이렇게 해라. 태권도를 계속하던 공부를 하던 네가 선택해라. 학원을 계속 다니려면 도장을 끊어라. 아니고 태권도를 계속하려면 학원을 끊어라. 내일 학원에 오면 태권도를 접은 것으로 보고 안 오면 학원을 그만두는 걸로 알겠다. 그만 가봐”


 녀석은 이튿날 학원에 왔다. 열심히 공부하겠단다. 성적이 중간쯤인 아이지만 공부를 하면 잘할 수 있는 싹수가 보였다. 겨울방학 동안의 하드트레이닝을 거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간고사에서 전교 석차가 30등이 되었다. 뭐든지 적극적이었다.


 바닷가로 여름캠프를 갔을 때 일이다. 아침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녀석이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의 텐트에 갔더니 자신이 한 오바이트 오물에서 머리를 쳐 박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제 놈들끼리 음주를 한 거 같았다. 녀석을 깨워 샤워를 시키고 오물을 퍼내고 텐트를 씻었다. 그제 사 정신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2학기가 되고 녀석은 정말 열심히 했다. 공부에 맛을 들었다고 할까? 늘 함께 붙어 다니는 단짝인 △△이에게 녀석을 잘 챙겨주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해 겨울캠프는 오대산 등반이었다. 희망자만 참석을 했다. 그래도 고등부는 한 둘 빼고는 거의 모두 참석을 한다. 눈이 내려 예상보다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서둘러 저녁을 해 먹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에게 음주 금지를 내렸다.


 “공부할 때는 하늘이 노랗게, 놀 때는 하늘이 무너지도록 하라”


 이게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멘트다. 원훈이라면 원훈이랄까. 노래하고 춤추고 신나게 논다. 나중에는 카드놀이로 조용히 하루를 접는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발이 더 세찼다. 등산 금지령이 내릴지도 몰랐다. 내가 등산화를 신으니 선생님들이 걱정스레 물었다.


“이런 날씨에 등반이 되겠습니까?”

“계속 내리지는 않을 거 같으니 일단 가보는 거지. 여학생들은 놔두고 남학생 중에 희망자만 데리고 갔다 올게”


 녀석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1학년 2명, 2학년 4명 나까지 일곱 명만 오르기로 했다. 나머지는 베이스캠프인 펜션에 남기로 했다. 학원 기사에게 여섯 시간 후에 반대편에 차를 대기하고 있어 달라고 하고 핸드폰을 휴대하고 떠났다. 다행히 입구에 도착할 때쯤엔 눈이 그쳤다. 등반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모르니 여섯 시간 안에 도착을 안 하면 조난신고를 하라고 남아있는 인솔 선생님에게 당부를 했다.


 다들 씩씩하게 출발했다. 아이젠이 하나밖에 없었다. 계곡 다리에 도착하니 웬 아가씨가 다리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다리가 구멍이 쑹쑹 뚫린 철제로 되어있고 그 아래 물살이 빠르게 흐르니 시각적으로 무서울 만했다. 그래도 다 큰 어른이 그러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한편으로 웃겼다. 요즘 말로 웃픈 현장이었다. 아이들을 시켜서 안전하게 건너편으로 옮겼다. 아이들이 “나중에 다시 건너야 되는데 그땐 어떡해요?”라고 했다. “그땐 또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가자”


 조금 오르는데 산 위에서 내리꽂듯이 백 원짜리 동전만 한 눈발이 날렸다. 얼굴에 맞으니 얼얼할 정도로 아팠다.


“고개를 숙이고 가라. 밑에만 보고 이동해“


잠시 후에 신기하게도 또 멎었다.


“이제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선녀탕이 있는데 거긴 선녀의 혼이 동정남을 데리고 간다는 전설이 있어. 조심해야 돼”


그때 녀석이 자기는 동정남이란다.


“아니 자위행위도 안 한 진짜 동정남을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요. 전 진짜 동정남인데요.”


 같이 가던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그렇게 3시간쯤 올랐을 때다. 또 눈발이 내렸다. 1미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찼다. 약간은 불안했지만 계속 가기로 했다.


“아까 얘기했던 선녀탕이 바로 앞일 거다. ○○이는 조심해”


 길이 좁아지고 미끄러웠다. 바위틈이 약간 벌어지고 계단처럼 생긴 부분이었다. 내가 나무를 잡고 아이들을 하나씩 올려 주었다. ○○이가 건너고 마지막 아이를 건네고 앞을 보니 방금 건너간 ○○이가 보이지 않았다.


“쌤”


절벽 아래에서 녀석의 소리가 났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녀석이 절벽 중간에 나무를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거기 꽉 붙들고 있어.”


 내가 그렇게 소리를 치는 순간에 녀석이 아래로 떨어졌다. 손을 놓은 건지 미끄러워 놓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침착해야 했다. 내가 내려가니 녀석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눈이 무릎 정도까지 쌓여 있어서 완충 역할을 해 준 것 같았다. 바지가 찢어지고 정강이 쪽이 하얗게 보였다. 순간 뼈가 부러져 튀어나온 줄 알았다. 내가 윗옷을 벗고 속옷을 찢어 녀석의 다리를 동여맸다. 아이들 둘이 따라 내려왔다. 녀석을 둘러업고 겨우 절벽 위로 올라왔다. 눈은 또 그쳐 있었다. 하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았다. 그때는 요즘만큼 휴대폰 통신시설이 좋지 않을 때다. 소위 벽돌 폰이라고 불리는 휴대폰 시절이었다. 서로 교대로 업고 하산을 하면서 통화를 시도하니 실장이 받았다. 입구에 차를 대기하라고 하고 하산을 계속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봉고차가 보였다. 실장을 시켜 녀석을 병원으로 후송하라고 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아이들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다.


캠프에 돌아와 있으니 녀석이 왔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랬다. 다행이었다.


“그럼 아까 본 허연 건 뭐였지?”

“아……. 그거 찰과상이 순간 일어나면 그렇게 된답니다”


실장이 대답했다.


“쌤, 원장님 때문에 내 다리 자를 뻔했잖아요”

“뭔 소리야?”


 내가 속옷으로 상처를 동여맨 게 잘못이랬다. 오히려 그게 위험한 처리라고 했다. 땀에 젖은 것으로 동여매면 파상풍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병원에 빨리 도착해서 괜찮을 거라고 했단다. 녀석에게 물어보니 절벽에 매달려 있다가 내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손에 힘이 풀리더란다. 선녀 혼이 동정남을 데려가려 했던 걸까? 농담으로 한 게 실제로 일어날 뻔 한 사건이었다.


다행히 녀석은 별 탈 없이 잘 회복이 되었고 그런 경험이 더 단단한 정신을 만드는 계기가 된 듯했다. 녀석은 2학년이 되어 문과에서 전교 3등을 했다. 그리고는 부산대를 갔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모신문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신영호 作/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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