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훈 May 26. 2022

네가 그 올백이야?





 내가 가끔 가는 주점의 사장님 딸이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다. 중3이었다. 늘 올백을 받는다고 했다. 갈 때마다 내가 얘기했다.


“그 얘 나한테 보내요.”


사장의 말은 지금 아이가 잘 다니는 학원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사장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빨리 학원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소위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프랜차이즈 학원이긴 하지만 중등부 전문 학원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고등수학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대개 학원들은 욕심을 내게 마련인 게 중3을 버리지 못하고 끌고 간다는 것이다. 고1 예비반 과정을 만들고 자연히 떨어져 나가는 아이들은 떨구고 끌고 나간다. 이것이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언젠가 고1 아이 하나가 왔다. 이전 학원에서의 진도를 물으니 우리보다 조금 덜 나가 있었다. 보충수업을 해서 진도를 맞춰야 했다. 문제는 우리는 한 바퀴를 돌고 여기까지 온 반면 이 아이는 이제 처음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자연 기존의 아이들과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중등부 전문학원에서 제대로 고등부를 지도할 수 없는 선생님이 아이를 맡으면 하루 공부해서 하루 가르치는 꼴이 날 수 있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잘 아는 학원 실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 선생, 어려운 부탁 하나 하자.”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한 분을 과외해 주면 하네”

“네? 선생님을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나이가 좀 있으신 선생님인데 어떤 파트가 약해서 그 파트만 지도를 해줬으면 했다. 승낙을 했다.


이 선생님이 한날 전화가 왔다. 어디시냐고 물으니 과외하는 학생 집이랬다. 그 집 화장실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낮에 설명해줬던 문제가 안 풀린다는 거였다. 한참을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었다.


“선생님, 그냥 다음 시간에 풀어준다고 하시고 넘어가십시오”


한사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화로 설명해도 못 알아먹는 걸 어쩌자는 건지. 오히려 고집 피우시는 게 더 봉변당하는 일이니 그냥 다음에 풀어 준다 하고 넘겨라 했다. 그다음 날 내가 한 소릴 했다.


“아이들 가르치는데 낮에 한번 풀어보고 저녁에 가르친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선생입니까? 선생은 최소한 몇 걸음이 앞서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날 한참 후배인 나에게 혼쭐이 났다.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몇 년간 스승의 날이 되면 제일 먼저 밥을 사러 오셨는데 어느 날 그것도 끝이 났다.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개를 잘 가르치다가 한 개를 잘못 가르쳐도 신임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자리가 선생의 자리다. 또한 선생의 행동 하나로 아이들의 장래를 망칠 수도 있는 막중한 위치에 있는 게 선생이다. 선생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어느 날 누가 불쑥 찾아왔다. 예쁜 교복을 입은 여자애 둘이었다.


“샘,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누군데…….?”


그 애가 이름표를 꺼내 보였다.


“어 네가 그 올백이냐?”

“네, 엄마가 가래서 왔어요.”

“어 잘 왔다. 성적은 어때?”

“안 좋으니까 왔죠”


 그때가 고2 2학기였다. 내가 누누이 얘기했던 시간이 1년 반이나 지나 있었다. 중학교 올백이었던 아이가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다. 어찌 이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같이 온 녀석도 그랬다.


 둘이 한 팀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올백은 금방 따라왔다. 논점을 집는 연습을 했다. 중학수학은 반복학습이나 심지어 외워서도 문제를 맞힐 수가 있다. 단편적인 논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수학은 한 문제 속에 여러 개의 논점이 녹아 있기 때문에 그걸 집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들의 상호관계를 파악해 정답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논점을 다 안다고 해서 정답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가지는 수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해야만 한다. 중학교 때 만점을 받던 아이들 중에는 단편적으로 공부하거나 수학을 암기식으로 공부한 아이가 더러 있다. 이런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와서 힘들어하게 된다.


 겨울방학이 왔다. 방학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기회다. 쳐진 아이들이 추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방학인 것이다. 둘은 아주 친했다. 단짝이었다. 올백에게 친구를 끌어 줄 것을 주문했다. 수업 시간에도 올백에게 설명하게 했다. 빗나가면 내가 제동을 걸거나 막힐 때는 내가 힌트를 주는 식의 공부가 많았다. 고3이 되니 문제풀이에 대한 요령도 익혀야 했다. 시간 안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방학이 지나고 처음 치른 3월 모의고사에서 1등급과 3등급이 나왔다. 올백은 이제 궤도에 진입한 듯 보였다. 6월 모의고사에서 확인이 될 터였다. 문제는 ○○이었다. 생각보다 회전이 느렸다. 욕심을 버리고 버리는 전략을 폈다.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전략은 버리는 전략이다. 1등급의 아이들은 30번, 29번, 21번을 버리고 시작한다. 그것만 버려도 많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만큼 다른 문제에 투자할 시간이 많은 것이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버린 문제를 차례로 풀어내는 전략을 쓴다. 버린 문제는 아예 거들 떠 보지도 못하게 한다. 미련을 두고 이것저것 손대다 보면 망한다. 수능은 3점짜리라 쉽고 4점짜리라 어려운 게 아니다. 그 문제에 어떤 논점이 숨어 있느냐에 따라 배점이 정해진다. 4점짜리라도 내가 아는 논점이 들어 있는 건 쉽게 풀 수 있지만 3점짜리라도 내가 모르는 논점이 들어있는 문제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험지를 받아 들면 버릴 문제를 추려서 돼지꼬리를 다는 것이 먼저다.


녀석들은 최종 1등급과 2등급이 되었다. 나란히 간호학과를 갔다. 아쉬운 것은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난히 SKY를 갔을 것이다.



신영호 作/수채화



























작가의 이전글 기자가 된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