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든 인형은 업사이클링 인형이었다

내 마음 돌보기

by 꼼지맘

나는 캐릭터디자이너로 사회에 첫출발을 했다. 문구류 디자인, 의류디자인, 게임 캐릭터 개발자등이 나의 일이였다. . 그러다 타지인 서울에서 결혼생활를 시작하고, 연년생 두 아이를 출산하며 경력단절여성이 되었다.


연년생 두 아이의 독박육아를 하면서 경력의 단절뿐만 아니라 외부와도 단절이 되는 시간이 많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외출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상이라 생필품과 식재료들도 집 근처 마트에서 전화로 주문해야했다.


매일 야근으로 늦은 퇴근을 하는 남편은 퇴근 후 힘든 몸으로 두 아이의 육아를 조금이라도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육아는 내가 경험했던 가장 힘든 육체노동이라는 생각은 두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찾은 취미생활

연년생 두 아이의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인형을 만들고 아기용품을 만들었다. 나의 아이디어노트에 그림으로 그리던 캐릭터들을 가사시간에 배운 바느질을 생각해 내며 서툰 바느질로 인형을 만들었다.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도 못 가는 일상이라 인형을 만드는 재료들은 대부분 집에서 사용하던 수건과 남편의 옷과 나의 옷, 작아진 아이들의 옷들이었다. 서랍 어디선가 찾은 종이케이스의 휴대용 반짇고리의 실과 바늘, 낡은 쿠션의 솜이 나의 재료 들이였다.


인형을 만들고 아기장난감을 만든 이유는 2가지였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엄마의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 가장 부러웠던 건 엄마가 손뜨개로 만들어준 스웨터나 목도리를 하고 오는 친구들이였다.


나의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적 기억에도 가게를 하셨다. 손으로 만든 뜨개옷이나 목도리가 없었던 것 대신 엄마는 건강한 음식에 신경을 많이 쓰셨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손으로 만들어주는 장난감이나 아기용품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

아기들이 잠든 사이에 만든 인형을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리는 것이 나의 취미생활이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 인형 만드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집에서 낡은 수건과 작아진 옷, 못 입게 된 옷들이 인형이 되고 추억으로 남았다. 첫아이가 입었던 내복, 둘째 아이가 좋아했던 원피스, 얼룩이 생겨 못 입게 된 아이들을 수유할 때 입었던 나의 옷, 연예를 하면서 생일 때 선물한 남편의 셔츠. 정말 좋아했던 낡은 청바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이 담긴 인형들이 만들어졌다. 업사이클링이란 단어도 없었던 그때는 리폼이라고 했었다.

대략 10년 뒤 출판사와 4번째 책제작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나의 추억이 담긴 옷들로 만든 인형들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4번째 책은 나와 가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업사이클링책 [내친구꿍꿍씨]가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국내 출판에 이어 대만에서도 출판이 되었다.


당시 나의 인형만들기는 나의 힘든 시간을 함께해준 고마운 취미생활이며 나의 마음돌보기였다.

나는 암을 만난뒤, 내가 가장 좋아했고, 행복했던 시간이였던 인형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체력을 키우고, 항암치료를 열심히 하며, 인형을 다시 만들날을 위해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가 암을 만난뒤 항암치료를 앞두고 나에게 한 약속이 있다.

건강하게 여행을 다니며, 그 추억을 담은 인형을 만드는 호호할머니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였다.


약속지키기

나는 오늘 다시 인형들을 꺼내보고, 나의 반짓고리를 정리했다. 요즘 틈틈히 노트에 인형스케치를 하고 있다.나를 위한 인형을 만들기 위해 ...




그리고 남편과 나는 내 친구 꿍꿍씨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꼼지맘의 수다쟁이 인형들] 동화책을 독립출판으로 만들었다.



내친구꿍꿍씨와 [꼼지맘의 수다쟁이 인형들] 북콘서트와 전주시민들과 함께한 눈물인형 벽화 그리기

https://blog.naver.com/ccomzmom/22051611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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