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KBS 뉴스광장 2023년 10월 14일 AM 7~8 사이에 방송이 송출이 된다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0월 13일이니 내일 아침이다.
나의 일과 담심포의 활동이 방송에 소개가 된다. 나는 사회적 기업 담심포의 대표다. 담심포는 국내에서 교과서연계 점자촉각교구재를 개발하고 기업이 임직원참여형 봉사활동으로 교구재를 제작해서 맹학교와 시각장애아동의 가정에 무상보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그래서 종종 시각장애아동의 교구재에 대한 소개와 사회적기업 담심포의 스토리, 개발자로서의 나의 이야기 등을 촬영을 하거나 인터뷰를 한다. 나의 업무 중 하나이다.
이번방송에서는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아동들이 담심포의 점자촉각교구재로 학습하고 놀이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다고 했다. 귀한 영상이다. 제작과 보급을 함께한 참여봉사자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이다.
나의 일과 사회적기업 담심포
나는 2005년 국내 최초의 점자촉각그림동화책을 제작하면서 시각장애아동의 교육불평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봉사활동과 크라우드펀딩으로 점자촉각교구재를 개발하고 제작 보급하였다. 봉사활동의 한계를 느끼고 2019년 사회적 기업가육성사업으로 주식회사 담심포를 설립하고, 다음 해 2020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 매년 5종이상의 교과서 연계 점자촉각교구재를 개발하고 있다.
개발된 점자촉각교구재는 비대면 봉사활동 KIT로 상품화해서 지금까지 국내외 600개 이상이 기업기관의 임직원참여형 봉사활동으로 점자촉각단어카드와 점자촉각책, 점자촉각놀이교구재들을 10만 개 이상 맹학교와 시가장애아동들의 가정에 보급했다.
나의 업무
대표, 개발자, 강사, 홍보마케팅
나는 점자촉각교구재 개발자이기도 하고, 강사이기도 하다. 나의 주 업무는 점자촉각교구재 개발과 시각장애(아동)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 콘텐츠 개발을 위해 맹학교선생님과 시각장애아동의 부모님, 시각장애인과 함께 소통하는 일을 한다.
시각장애아동에게 담심포에서 개발한 점자촉각교구재가 필요한 이유를 알려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맹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는 비시각장애아동의 교과서와 동일한 교과서를 사용한다.
그래서 시각장애아동의 학습을 돕는 점자촉각보조교구재가 필요하다. 맹학교의 시각장애아동들 중에는 중복장애 있는 경우가 많다.
전맹, 저시력등 다양한 시각장애가 있다. 종이에 점자로 되어있는 보조교구재만으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습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맹학교 선생님들이 업무 이후에 교구재를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래서 담심포는 맹학교의 선생님과 함께 교과서 연계한 보조교구재로 점자촉각교구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교과서 / 점자 보조교구재/ 담심포의 점자촉각보조교구재
나의 업무- 홍보 마케팅
인터뷰를 하다 보면 특별히 사연이 있는 교구재가 있는지 물어본다... 사실 모든 교구재들이 사연이 있고 감동스토리가 담겨있다. 현장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선생님들과 시각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의 갈증이 담긴 교구재이기 때문이다. 점자촉각교구재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이다.
암을 만나고 모든 것을 멈추었다.
내가 암을 만나고 모든 것을 멈추고 치료에 집중했다.
다행히 그동안 개발한 제품들로 기업의 참여와 함께 그해 필요한 점자촉각교구재를 잘 보급했다. 하지만 그해 개발해야 하는 교구재들을 개발하지 못했다.
매년 진행했던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팀들의 전문멘토, 컨설팅 등과 협력등을 모두 멈추었다. 물론 방송 및 인터뷰등도 모두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체력이었다.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호흡이 딸렸다. 2시간 이상 강의를 해도 힘들지 않았던 호흡이 암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목소리도 작아지고 무엇보다 호흡이 가빠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다양한 공모사업과 대회에도 나가지 못했다. 내가 했던 업무 중 정말 최소한의 업무만을 진행할 수 있는 체력이었다.
암을 만난 뒤 나의 주 업무- 검수작업
1~2시간 정도씩 틈틈이 하는 점자촉각교구재 검수작업이었다.
봉사자부들이 만든 점자촉각교구재는 검수 작업 후 깨끗하게 포장해서 맹학교와 시각장애아동의 가정에 보낸다. 그때 거의 모든 점자촉각교구재들을 내가 직접 검수를 한다.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검수작업은 내가 직접 했다. 유일한 나의 고정 업무였다. 꼭 필요한 미팅은 집 근처 카페에서 진행했다. 업무에 필요한 분들에게만 나의 암과 치료소식을 전했기에 내가 암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건강상태를 몰랐다.
그렇게 조용한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업무복귀 - 점자촉각교구재 개발자
8번의 항암치료가 끝나고, 1월부터 회복을 하면서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그동안 검수를 하면서 생각했던 교구재 보완작업과 7종의 점자촉가교구재 개발작업을 조금씩 시작했다.
맹학교 선생님과 시각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이 원하고 필요하다는 7종의 교구재를 개발을 하고 나니 나의 몸도 거의 회복이 다 되었다. 5월이 되었다.
만들기 동영상 제작을 하면서 호흡이 조금씩 부족할 때가 있었지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7종의 점자촉각교구 재개발은 마쳤다. 다음은 보급을 위해 많은 기업기관의 사회공헌활동이 필요하다. 그것도 참여형 봉사활동.
1년에 한종의 점자촉각교구재를 약 2000개 정도 봉사활동으로 제작 보급해야 한다. 국내 학령기연령의 시각장애아동은 약 2500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점자촉각교구재 보급을 위해 홍보마케팅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매년 1~3회 이상 펀딩과 모금을 하고, 각종 대회와 공모사업에 나가서 알려야 한다. 그리고 방송과 인터뷰등도 도움이 많이 된다.
매년 4~10회 이상의 방송과 인터뷰를 해왔었다. 올해 개발된 7종의 교구재들 대부분 보급을 다 하지 못했다.
섭외요청 - "언제든 가능합니다"
지금은 어떤 인터뷰든 방송에서 요청이 오면 " 언제든 가능합니다"가 나의 대답이다. 보급을 위해서는 많이 알려야 한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맹학교에서 선생님은 교구재가 제작되면 보내달라고 기다리고 계신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연령에 필요한 교구재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