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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Jul 21. 2021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비로소 지금 여기


안방 화장대 위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네모난 액자가 놓여있다.  곁에는 달걀만  미니 액자가 있는데, 거기엔 여섯  무렵 딸아이가 동물 종이 왕관을 쓰고 수줍게 웃고 있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그 소망은 내 어린날 마음 한구석 깊숙이 묻어두었던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


쪼꼬만 어린아이 시절부터 나는 방구석에 홀로 앉아 수많은 방황을 했다. 집 앞으로 동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OO야~ 노 올~자~”라고 불러대도 방 안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공부에 목을 맨 어머니 덕분(?)에 내 방에 홀로 수감생활 한 날들이 한숨으로 덕지덕지 쌓였다.


혼자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빗자루를 휘두르는 엄마에게 한바탕 혼쭐이 나면 어쩔 도리 없이 책상에 앉아야 했다.


책상에 앉는다고 공부하는 줄 알면 큰 착각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 멍하니 수많은 날들을 보냈다.






최근 심리학에서 다루는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방황하는 마음의 상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한다고 말한다. 특정한 일에 몰두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신경 네트워크다.


바쁘게 하루를 움직인 날에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여유가 생기면 바로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이를 서넛쯤 기르면서 job을 가졌다면 모를까.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런 멍한 여유 시간이 때때로 찾아온다.


디폴트 모드에서 우리는 어디로 방황하는 걸까? 대부분은 최근에 있었던 일이나, 과거의 지울 수 없는 기억, 또는 미래에 대한 염려와 기대로 이리저리 오간다. 지금 현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삼십 대 중반 즈음, 전업주부생활이 손에 익고 아이가 조금 자라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우울증 같은 것이 찾아왔다. 어느 날, 하루 종일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며 지내는지 관찰하고는 현타가 왔다. 쓸데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더불어, 과거의 관계를 무한 재생하며 아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한 인식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나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여전히 그곳에서 맴돌았지만 그러한 마음의 방황을 발견할 때마다 그 자리에 다른 걸 대체하려 발버둥 쳤다. “치유 세미나”를 듣거나 “자기 계발서”를 보거나, “질 좋은 강연”을 끼워 넣었다. 딴생각할 겨를 없이 밀어붙이기 전법.


가끔은 그 방황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헤매는 형상들이 고스란히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그 자체만으로도 변덕스러웠던 마음의 바다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가끔씩은 불청객처럼 불쑥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밀려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신을 소환해 다짜고짜 방법을 달라고 기도하기고 했다.


그런 시간이 5년 10년 세월로 쌓이고 나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조금 경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현재를 오롯이 즐기고 몰입하는 경지에는 도달하진 못했지만, 하릴없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거기서 마냥 방황하지는 않는다.


마음 챙김 명상이 유행처럼 번지는 걸 보면, 나만 그런 방황을 하는 건 아닌 듯싶다. 긴 시간 돌아왔지만 나에게 그 처절한 모드 전환의 시기는 반드시 겪어야 했던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나를 들여다본 시간들 덕분에 이제 조금은 “지금 여기”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많이 현재를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화장대 위 달걀 액자 속에서 딸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다. 어느새 거울 속 내 얼굴은 세월을 입었다. 그리고 방황하던 공허한 눈빛은 사라졌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떤 모습일까. 토닥이며 미래로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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