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덕 Jul 31. 2021

"학교"에 대한 단상


내 사유 속에 "학교"라는 주제가 묵직하게 다가온 건 대학교 캠퍼스에서 나름의 자유를 누리던 즈음이었다. 그것에 천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영화 <클래식>의 장면처럼 당시 대학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낭만에 흠뻑 취해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데 유독 나에겐 "학교 시스템"이 던지는 질문들이 파편처럼 뇌리를 맴돌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개인적으로 학교란 감옥 같은 곳이었다. 시험 성적으로 서열화되고 그에 따라 차별받거나 칭찬받으며 길들여지는 순간이 답답하기만 했다. 학교의 집단적 의례들이 다 의미 없게 느껴졌지만, 나름의 기지와 집중력으로 벼락치기 성적은 꽤 좋은 편이어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과 또래들의 주목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에 두 번 떨어졌다. 나름 공부 잘하는 딸을 자랑하고 싶었던 부모에게 나는 큰 죄인이 되었다.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과를 선택했다. 아니 선택당했다. 원인 모를 무력감에 빠지고, 몸이 아프고 호르몬의 이상이 생겼을 때, 다급한 엄마의 질문은 이런 거였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니?" "너 그때 그 예고 가고 싶다고 했던 그거, 그 미술 할 거야?"  


질문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런 질문은 진작에 왔어야 한다. "너는 의대 가라. 그게 제일이다" "S대 가야지?!." 마치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무수히 듣던 이야기들은 잘못 쓴 종이조각처럼 구겨졌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팠는지 모른다. 도무지 나는 부모나 사회가 정해 준 틀대로 사는 삶이 맞지 않는 아이였다.






나란 존재는 과연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가?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에 의해 규율이 내면화된 순종적 인간 군상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주체적인 생각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를 착각하지만, 실제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스스로의 자발성을 이미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의 모형으로 팬옵티콘을 가져온다.




팬옵티콘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이며 공리주의자로 잘 알려진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이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푸코는 이러한 벤담의 "팬옵티콘"(혹은 "파놉티콘")을 현대 사회 체제의 권력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감옥뿐만 아니라 공장, 학교, 병원, 정치 등 대부분의 사회 조직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그에 속한 개별자들은 그 권력에 대한 순종을 내면화시키며 살아간다고 보았다.  마치 감시자의 눈을 항상 의식하며 사는 노예처럼 말이다.  






Y2K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2000년대 초, 나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정의 내리고 싶었고, 때마침 한겨레 신문의 <함께하는 교육>이라는 시리즈 기획 칼럼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서 처음 접한 "대안학교"라는 개념은 ‘참교육’이란 것에 조금 더 다가간 모습으로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다. 더 넓게는 "홈스쿨링"이나 "협동조합 교육"등도 눈에 들어왔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으로 시작되는 학교 운동장의 땡볕. 네모난 교실 칠판에 빽빽하게 쓰인 암기할 내용들. 그런 획일화된 몰개성의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싫었다. 대안이 있다니! 사막을 헤매다가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일반 초등학교를 거쳐, 중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다니게 되었다. 그곳이라고 "팬옵티콘"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선생님의 권위가 있고, 교장이라는 학교의 대표 권한이 있다. 그럼에도, 기존 학교 시스템보다는 훨씬 수평적 관계를 누릴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선택권이 주어지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었고 자발적인 활동이 꽤나 많았다. 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게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원하던 일을 찾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말이다.







내가 "학교"에 바랬던 건 무엇일까?

영국의 Summerhill이 한국에 있다면 만족했을까? 덴마크나 핀란드의 교육 환경을 다큐멘터리로 접할 때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렇게 자유로운 교육환경 속에 아이들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키워졌으면 좋겠다 바라면서도, 내 아이가 좀 더 빛나길 바라는 욕심에 스스로 부끄러워진 적도 있다. 아이에게 은근히 가치관을 강요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다행인 건 어린 시절 그 갑갑했던 생생한 기억과, 바람직한 "학교" 모습에 대해 고민한 시간들이, 정상 괘도를 벗어나려 할 때마다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사회의 정의를 위한 책임과 개인의 자유는 상충하면서도 균형점을 필요로 한다. "학교"또한 그럴 것이다. 규율과 규칙, 시스템이 교육의 효율을 높이겠지만, 반대로 틀에 박힌 형식으로 창의성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도 있다.


최소한의 틀과 최대한의 자유가 있는 "학교"공간. 그런 "학교"를 여전히 꿈꾼다. 인생 자체가 배움터라면 여전히 나는 인생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내면의 줄다리기는 항상 내가 마음을 쏟는 쪽으로 기운다. "감시와 처벌"이 없는 이상적인 학교! 내 마음속에 그런 학교를 짓는 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전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