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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덕 Oct 14. 2021

"house" vs. "home"

집에 대한 감정, 그리고 욕망


집에 대한 꿈을 갖고 있거나 꿈을 애당초 접어버린 사람들. 우리 모두는 그 사이에서 어디쯤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의, 식, 주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욕망이기에 꿈을 접었다 할지라도 내면에 잠재된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초월했다면 삶에서 큰 짐 하나를 덜게 된다.



© chuttersnap, 출처 Unsplash



고가의 아파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된 건 "자본주의"의 법칙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너도나도 느끼기 때문이리라.


최근 "집"에 대한 생각을 지인들과 이야기하던 중 툭 튀어나온 워딩이 이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에서 내리기로 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집으로 재산을 축적하거나 불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정확히는 "열차에 탄 적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부모님들이 평범한 삶을 잘 유지해 주셔서, 살아오면서 "집"때문에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집에 대한 욕망도 특별히 없었다. 나에게 결핍은 다른 것에 깊이 박혀 있었다. 

결핍은 반드시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으로 자리하기 마련이다.








집에 대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 와중에, 지난 연휴 지인의 지인이 살고 있는 제천 어느 산골에 다녀왔다. 논두렁처럼 좁은 길을 지나 깔딱 고개를 넘고 나면, 집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닌 듯 보이는 산속에 집이 한 채가 있었다.




철학자의 풍모를 지닌 남편분과 상큼한 도시녀의 느낌이 드는 아내분이 주차할 장소를 안내해 주었다.


집 밖에는 큰 개 두 마리가 순둥 한 눈을 꿈뻑이며 우리를 맞아 주었고, 집으로 들어서자 강아지 2마리와 고양이 2마리가 격하게 손님을 맞는다.






갓 볶은 커피 빈 향기가 그윽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담소를 나눌 즈음, 집주인 분이 요즘 심취한 취미이신지 활을 쏘아보겠냐고 권해서 우리 모두는 우르르 집 앞으로 나왔다.





활을 겨누는 방법부터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과녁을 명중시키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좀 이른 시간, 맥주를 받아 들고 망중한을 즐기며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집은 세를 얻어 살고 있다고 했다. 교육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본래 노마드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도 도심 가까운 숲 안에 살곤 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돌리면서, 아예 이 산골로 이주해 왔다.


집이란 이 부부에게는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며, 자연과 소통하는 장이고, 삶을 오롯이 즐기는 수련의 장소이다. 소유의 개념도 미래를 위한 부의 축적의 개념도 없다.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곳에서 재즈를 들으니 더욱 감미롭다.


고구마를 처음 심어 보았다고 해서, 땅을 헤쳐 고구마도 캐고, 상추와 고추도 따서 저녁 식탁을 준비했다.





이곳 시골 라이프의 "HOUSE"는 최첨단이다. 와이파이가 음악을 맘껏 스트리밍 해주고, 온라인의 세상에는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접속할 수 있다. 로봇 청소기가 반려견과 반려묘의 털을 알아서 청소하고,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려 커피를 마시며, 김치냉장고는 맛있는 김치와 장아찌를 적정한 온도로 기막히게 보관해 준다.




저녁 상이 차려지고, 가져간 와인을 따서 깊어갈 밤을 준비한다.





시골에서 해가 지는 건 순식간이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다.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고, "교육"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 부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욕망인 소유 개념의 "HOUSE"를 내려놓고, 그들만의 안식처인 "HOME" 스위트 홈을 얻었다.








집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어제였다. 방배동 사잇길에 갤러리 "스페이스 엄"이 있다. 이곳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한국화가 허현숙 작가는 "먹"이 아닌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전시의 주제는 바로 "LIVE HOUSE"


허현숙 작가의 작품 아래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누가 그랬던가
애낳고 나이먹으면 전투적으로 삶이 변한다고

마냥 유영하고 흐르던 삶이 일시간에 군인이 되었다.
하루, 한날, 1년이고 완전군장메고 24시간을 행군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부모를 업고 애를 안고, 남편 손 부여잡고 살아갈 곳을 찾아다니는 매일이 생존과 같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경제관념에서의 집을 찾아해매고 다녔던가.

살아보니, 나에게 "집"은 애착이자, 애증이다.
2021년, 30대 딸과 아내와 엄마로서 "집"은,
매일이 생존이고, 현재진행형이다.






30대의 그녀의 삶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육아맘이자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정신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키곤 했던 일상의 무게에 몸서리를 쳐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결혼 전부터 "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추억이 깃들었던 그 집이 허물어지고 흔적조차 없어졌을 때, 기억을 되짚어 그 집을 그렸다. 그 집은 "house"가 아닌 할머니와의 따스한 추억이 담긴 "home"의 기억들이다.





위젤라 TV <기린샘의 미적수다>에서 "작가와의 인터뷰"와 "갤러리 대표님과의 만남"을 녹화했다. 덕분에 즐거운 통찰을 가슴에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방송분은 2주 후 네이버 오디오 클립, 팟빵, 팟캐스트에서 만날 수 있다.






인터뷰 중, 작가님의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림에 담아낸 풍자만큼 "말"에도 힘 있는 해학이 있었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현실에 대한 분노,
가지지 못하는 걸 어떻게 풀까 생각했어요.
 그럼, 그걸 그림으로 그려야죠.



그렇다. 작가는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온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면, 10월 27일까지 열리는 전시에 가보길 바란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가?

앞으로 갖고 싶은 집은 어떤 형태인가?

그것이 "house"이건 "home" 이건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다 이루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꿈꾸는 건 자유다. 그 꿈이 내 삶 전체를 위해 좋은 것이라면 어떤 우주의 힘이 도와줄지도 모른다. 


말초를 건드리는 것보다는 

좀 더 영속적인 걸 꿈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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