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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Sep 19. 2019

동행이 있었던 갈맷길
: 감천항~ 두송반도~ 다대포항

부산 갈맷길 4코스 2구간 일부, 7~8km, 3시간 소요

2017년 9월


그러고 보니 2년 전에 걸었던 길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동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갈맷길을 걷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껏 갈맷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혼자였다. 혼자 걷는 길은 자유롭다. 쉬고 싶으면 쉬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헤매는 길도 온전히 나의 길이었다. 하지만 동행이 있다는 것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배려한다는 것은 나의 자유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함을 뜻했다. 또한 길을 잃는 것은 동행에게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했었는데, 어찌 되었건 이번 길은 동행이 함께 하게 되었다. 


두송반도로 향하는 길은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은 길이었다. 이 길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같았다. 길 한쪽에 쌓여 있는 낡은 물건 가득한 고물상의 풍경은 지나간 시간의 풍경들이었고, 보도 블록 사이사이에 올라온 잡풀들은 문명을 뒤 걸음 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짓이겨진 은행나무 열매가 풍기는 냄새는 지나간 시절의 향수였다.  


엉성한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숲길로 들어서니 인적은 더욱 드물어지고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두송전망대까지 이어졌다. 이따금 차들이 비포장 길을 엉금엉금 달리면서 탈탈탈 먼지를 날린다. 동행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가 잠을 깨우는 것처럼" 뽀얀 먼지가 피어오른다. 


동행은 열다섯 살 소년이었다. 시를 좋아한다는 푸릇푸릇한 소년의 말들은 나에게 청춘만큼이나 신선했고 미처 낚아채지 못한 소년의 말들은 그저 한 획의 푸른 이미지만을 마음속에 남기고 휙 시간의 저 편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때의 대화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다만 글을 써 보라는 말과 내가 좋아하는 '월든'을 읽어 보라고 권한 것만이 기억이 난다. 열다섯 소년이 읽기에 '월든'은 너무 어려운 책일까? 소년은 과연 소로우가 지향했던 삶의 의미를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삶의 정수의 일부라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3시간이면 걷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보여행을 처음 해 보는 소년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소년이 걷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길이 소년의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면 나에겐 그것만이라도 함께 이 길을 걸은 행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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