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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Jun 03. 2020

멈춤이 있는 모습

여행이라고 꼭 멀리 가거나, 바쁘게 이곳저곳 뛰어다닐 필요는 없잖아.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더러 볼 수 있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행 가면 나도 저렇게 풍경 속의 한 점이 될 수 있을까?

여자는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옆모습 너머로 하얀 광안대교와 파란 바다가 보였다. 그녀는 해변 끝 벚꽃거리가 있는 아파트촌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종이 위로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 긁적이고 있었다.

시를 쓰는 걸까?

주위에 오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끔 머리를 들어 올렸다가 풍경을 보고는 다시 숙여 연필을 움직였다.

아파트 풍경이었다.

무심결에 나도 아파트촌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이 거기에 있었다. 거의 날마다 보았던 풍경인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마주치기는 했으나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언젠가 읽었던 '동물들의 침묵'에 나오는 표현이 생각났다.


'새들의 눈에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도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다른 눈으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새의 눈을 닮은 그녀의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레이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여자는 한참이나 거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여행자가 지겨워할 만한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행을 하면서 들린 곳에서 지긋이 앉아 풍경을 그린다는 건 천천히 여행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난 스스로 천천히 여행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저런 여유를 가지고, 하지만 지겨움에 지치지 않을 만큼만 머물면서 풍경 속의 한 점이 되어 스스로  풍경이 되는 그런 여행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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