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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Jul 31. 2020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

가 보지 못한 길을 영상으로 만났다

1
'부엔 까미노'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인사말이다. '좋은 길'이란 말이다.

96석 영화관에 나 홀로 앉아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를 보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2
대안학교에 다니는 십칠 세 소녀 다희.
흰 지팡이를 짚은 오십 대의 여성 시각 장애인 재한.

둘은 동행이 되어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800km의 길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고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그들의  버킷리스트의 최상단에 올려놓았다.

그 길을 두 여자가 걷는다. 다희는 재한의 눈이 되어 길을 인도하고, 재한은 그런 다희의 도움에 감사하면서도 미안해한다. 그러나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 다른 삶이 충돌하는 것임에 다름없다. 아직 인생 경험이 적은 다희가, 오랜 세월 차별을 받고 소외당해 온 삶을 살아온 오십 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숙소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재한은 화가 났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삶의 상처가 깊어 사소한 일에도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희는 '길이 좋은 길인지 나쁜 길인지는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달려 있잖아요. 친구랑 싸웠는데, 그 이후 오히려 친구랑 더 좋아지게 되면 그 싸움은 좋은 것이 되잖아요. 그러니 그냥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면 되잖겠어요?" 그러나 재한은 그 일은 잊을 수 없는 상처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오십 대의 시작장애인 여자가 십 대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의 삶이 다르고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둘은 함께 끝까지 산티아고 길을 완주한다. 그 길 끝에서 재한은 플라멩코를 춘다.


3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다. 본디 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실상 그것 자체가 행복이다.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삶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어떻게 다가올까?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겠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소리에 더 예민하다. 다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길에 재한은 '어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나!'하고 감탄하며 스마트폰에 새소리를 찍어 두려 한다. 각자 나름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길가에 전깃줄이 없어 아름다운 산티아고 길의 풍경 위에 이 길의 소리를 얹으면 어떤 풍경이 나올까?
침묵 속에 온 몸으로 맞이하는 장엄한 일출.
그 어둠이 밀려난 곳에서 눈을 뜬 새들이 지저귄다.
이른 아침부터 꽃을 찾아 벌판을 윙윙거리는 벌 소리,
가축들은 벌판에서 꼬리를 흔들어 파리를 쫓아내며 풀뜯는다.
바람이 비를 예고하며 순차적으로 숲을 흔들며 멀어지는 소리,
툭 툭 툭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가느다란 빗소리,
세찬 바람에 은빛 비늘 물고기같이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
광활한 대지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내리는 쏴쏴 빗소리,
귓전에 번득이는 천둥의 굉음,
점점 멀어져 가는 천둥소리,
세차게 흘러가는 돌돌돌 개울 소리,
꽃잎 끝에 맺힌 물방울 소리,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처벅처벅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리는 마을의 개소리.
사방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장엄한 소리는 경건한 마음을 일깨워 신에게 향하게 하고, 아이들의 웃음 같은 반짝이는 소리는 마음을 환히 밝힌다.누구에게나 행복은 있는 법이다. 눈먼 사람에게는, 앞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세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느끼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세계는 정작 스스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숨겨져 있다.


4
이 길의 끝자락에서, 이정표를 보고 다희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100km 남았다.
숫자가 너무 간단하네요.'

결국 삶을 논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너무 간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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