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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May 11. 2024

1

프루스트는 시공간을 뒤섞어 놓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기 난해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떤 분은 일 년에 한 번씩 읽는다고도 한다. 


왜?


프루스트의 문장은 놀랍다. 섬세하다. 다른 작가와는 아주 다르다.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통찰이 있으며, 어린아이 같은 장난스러운 유머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섬세한 독자는 프루스트의 진가를 발견하고 그를 사랑할 것이다. 

첫 몇 페이지에서 찾은 그의 몇 가지 표현을 들어보라.


1

소리라는 청각 감각이 거리 감각, 공간 감각,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추억으로까지 확장된다.


"기적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더니, 마치 숲 속에서 우는 새의 노래마냥 거리감을 드러내면서, 나그네가 다음 역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 황량한 들판의 넓이를 그려 보였다. 그가 따라가는 오솔길은 새로운 장소, 익숙하지 않은 행동, 밤의 침묵 속에 늘 따라다니는, 낯선 램프 불 밑에서 나누었던 얼마 전의 대화와 작별 인사, 임박한 귀가의 감미로움에서 오는 흥분으로 그의 추억 속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2

잘 읽어야 한다. 그러면 프루스트 특유의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잠을 자면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내 원초적인 삶의 시기로 금세 되돌아가, 작은할아버지가 내 곱슬머리를 잡아당기던 어린 시절 공포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공포는 곱슬머리를 잘라 주던 날 사라졌는데, 그날은 내게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날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지만, 할아버지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용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난 신중을 기하기 위해 꿈을 세계로 되돌아가기 전에 머리를 완전히 베개로 감쌌다."


마르셀은 왜 다시 잠들기 전에 신중을 기해 머리를 완전히 베개로 감쌌을까?


잠을 자면서 어린 시절의 공포가 떠 올랐다. 할아버지가 곱슬머리가 잡아당기던 고통, 어린 시절의 공포. 꿈속의 그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어렵사리 잠을 깨웠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전에.... ㅎㅎㅎ 머리를 완전히 베개로 감쌌다. 꿈에서 다시 머리 당겨지는 것을 피하려고.


3

"그러자 추억이,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곳, 혹은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곳에 대한 추억이 저 높은 곳에서부터 구원처럼 다가와..."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곳에 대한 추억"이라니, 참 대단한 발상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면서 프루스트는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한 추억까지도 샅샅이 뒤졌다는 말인지도...


4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대신 잠이 들었던 방에서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어둠 속에 홀로 켜진 등대처럼 램프 불빛이 새어 나온다."


프루스트의 표현법 가운데 재미난 것은 시공간을 틀어 놓는 것이다. 

시간순으로 말하자면,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대신 잠이 든 것'은 사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있었던 사실이다. 그걸 교묘히 뒤섞어 표현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가 나이 들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돌아본 삶에 대해서는 시간을 초월한 신과 같이 조망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실로 연결된 그 지점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을 뒤섞어 표현할 전후맥락을 완전히 꿰고 있고, 이런 전지전능한 입장을 그의 작품의 표현 속에 여기저기 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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