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을 갈 것인가?
네 놈은 길이 아닌 길을 달려온 게야!
길 아닌 길이라...
길이란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어떻게 된 심산인지 며칠 동안 드라마 '다모'에 푹 빠졌었다. 2003년 TV에 방영되어 '다모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드라마다.
1
먼지를 휘날리며 말들이 달린다.
"거기 서랏!"
쫓기는 자가 멈출 리가 만무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말에서 여자 아이가 굴러 떨어진다. 재무는 돌아다보며 소리친다. "재희야!"
재희를 구하기는 글렀다. 벌써 관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대역죄인으로 모함받은 아버지와 가족들은 몰살을 면치 못하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던 남매. 장재무와 장재희는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
2
"어찌 서출이 양반가 자제를 욕보일 수 있소이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출 황보윤은 오히려 뛰어난 재능이 한스럽다. 이를 질시한 못난 양반가의 자제들과의 충돌로 윤은 곤장질을 당한다.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양반을 능멸했다는 죄가 우선인 것이었다.
조선.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서출이 가질 수 있는 꿈은 없었다.
'나리, 공부를 하면 뭐 합니까? 쓰일 수 없는 재능은 그 자체로 저주입니다.'
'못난 놈,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언제든지 기회가 올 것이야.'
윤의 아버지는 윤을 산으로 보낸다.
3
서출 황보윤은 꼬마 여자 아이 관비 재희를 동생처럼 아낀다. 황보윤을 따라 산사에 올라간 재희는 윤과 함께 무술을 전수받는다. 수년이 흘렀다.
'스님, 훌륭한 제자를 길렀군요. 이런 산골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운 재능입니다.'
'비록 서출이지만 긴요하게 쓰일 데가 있는 아이입니다. 부디 귀하게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중한 무술을 연마한 윤은 포도대장의 천거로 좌포도청의 종사관이 된다.
산을 떠나기 전
'넌 이제 재희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채옥이다.'
채옥은 윤을 따라 산을 내려와 포도청의 다모가 되어 윤의 곁을 지키게 된다.
(조선시대 여형사를 다모라 한다.)
4
도성 내에 사주전(위조화폐)이 돌게 된다. 사주전을 유통시킨 장성백은 비록 화적의 두령이지만 탐관오리와 부패한 양반들을 처벌하고 민초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신망이 높다. 화적이라기보다는 의적인 셈이다.
'나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화적의 소굴로 잠입해서 사주전의 전모를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된다. 채옥아. 그런 위험한 일을 너에게 맡길 수 없다.'
다모 채옥은 사주전의 전모와 화적의 토벌을 위해 화적의 소굴로 위장 잠입한다. 채옥은 화적 떼와 사주전 모두가 역모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5
채옥은 장성백의 계책에 속아 황보윤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준다. 그로 인해 역모의 전모를 밝히려는 황보윤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포도청 대장과 종사관 황보윤 둘 다 목이 달아날 처지가 된다. 채옥은 황보윤을 구하기 목숨을 걸고 궁에 잠입한다. 왕의 호위무사들의 협공을 받은 채옥은 큰 상처를 입고 간신히 목숨만 붙은 채 왕에게 역모를 알린다. 왕은 포도대장과 윤을 풀어주며 역모의 전모를 밝히라는 밀지를 내린다.
6
숨만 쉴 뿐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채옥,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살리려 하였으나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은 마지막 수단으로 산으로 스승을 찾아간다.
'모든 것을 해 보았으나 헛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은 없다. 채옥이의 본능만이 깊은 잠을 깨울 수 있으니, 손에 사정을 두지 말고 천개령을 쳐라. 만일 죽는다 하더라도 채옥은 너의 손에 죽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직 살아나고자 하는 채옥이의 본능만이 그녀를 살릴 길이야. 손에 사정을 두지 말고 쳐라.'
7
윤이 채옥을 산사로 데리고 가 치료하는 동안 포도대장은 역모를 조사하면서 포도청만이 아니라 조정 깊숙이 역모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모의 주모자가 병조판서임을 눈치챈 포도대장은 비밀리에 이를 임금에게 고한다. 하지만 병조판서에 대한 임금의 신임은 두터워 오히려 포도대장은 임금의 신임을 잃고 만다.
8
역모의 길에 거칠 것이 없었다. 거사일이 정해졌다. 도성 안팎에 화약을 숨겨놓고 도성으로 진군할 부대도 준비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성백은 역모 세력이 왜적과 결탁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9
역모 당일 종사관 윤은 다모 채옥과 포도청 부장과 자신이 훈련시킨 비호대만을 데리고 홀홀 궁안으로 지쳐 들어간다. 어디 믿고 도와 달라고 청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장한 채 궁으로 잠입한 역모 군사들이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늦어지고 있었다. 왜적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알게 된 성백이 도성 진군을 포기하고 오히려 신호탄이 될 폭약들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다.
윤과 그의 휘하들의 활약으로 역모는 진압되고 역모의 주모자인 병판도 죽임을 당한다. 간신히 살아난 임금은 황보윤의 공을 치하한다. 서출의 황보윤이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으로 입신양명할 기회가 온 것이다.
역모가 실패로 돌아간 후 장두령은 화적 식구들을 해산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명한다. 하지만 왜적과 내통한 역모의 주모자 중 한 사람인 최 도방이 화적의 모든 재산을 들고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식구들의 생활 기반이 될 피 같은 돈을 찾아야 한다.
한편 역모를 진압한 후 장두령을 잡으려고 산채에 몰래 잠입한 채옥은 오히려 왜적들에게 잡히고 만다. 채옥을 인질로 잡은 최 도방은 황보윤에게 서찰을 보낸다.
'황보윤, 채옥이를 살리고 싶거든 혼자서 오너라'
황보윤은 채옥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약속된 장소에 찾아온다. 그때 장성백도 최 도방이 가지고 달아난 사금을 뺏으려 나타난다. 최 도방은 채옥이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며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장성백을 황보윤이 막아선다. 황보윤은 장두령과 싸우는 도중 최 도방에게 칼을 던져 최 도방을 죽인다. 최 도방이 죽으면서 사금이 바닷물로 쏟아진다. 분노한 장성백의 칼을 받는 황보윤. 죽어가면서 그는 장두령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장재무, 저 아이가 재희다.'
11
장승백은 관군들에게 쫓기다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된다.
"장승백, 네 놈은 길이 아닌 길을 달려온 게야!"
"길 아닌 길이라. 길이란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렸을 뿐이오. 내 오늘은 여기서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걸을 것이오. 언젠가는 그들의 피와 혼이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고 반드시 새로운 길을, 반드시 새 세상을 열 것이오. 난 지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오.'
12
아직 채옥은 장두령이 오빠인 걸 모른다. 황보윤을 죽인 장두령에 대한 분노의 일념으로 장두령을 쫓아온 채옥 채옥은 부들거리는 칼을 장두령에게 겨눈다. 몇 합을 겨루다 돌연 장두령은 칼을 거꾸로 들고 스스로 자신을 찌른다.
"보고 싶었다. 재희야..."
멈칫, 흔들리는 눈동자.
관군이 발사한 총과 화살이 무수히 장두령을 몸을 뚫는다. 채옥은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장두령을 막아서고 채옥의 등에 수많은 총탄과 화살이 꽂힌다.
13
서로 칼 끝을 겨누던 황보윤, 장채옥, 장성백. 어떻게 보면 그 누구도 욕할 수 없다.
각자의 길을 걸었을 뿐인데, 서로 칼을 겨누어야만 했던 현실. 현실은 모순덩어리인 셈이다. 장성백은 세상을 바꾸는 길을 택했다. 강자의 편에 서지 않고 핍박받는 백성의 편에 선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길은 사리사욕에 눈먼 세력에 이용당하는 길이기도 했다. 아무도 발을 디디려 하지 않던 곳을 달렸지만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황보윤은 서출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지만 시대적 가치관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갇힌 길을 걸었다. 전통적 유교적 가치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한 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정도라 생각하며 있는 힘을 다해 채옥을 사랑하는 마음을 억눌렀지만 모든 게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황보윤은 모순이 가득 찬 사회에서 모순을 모순으로 보지 못하고 만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장성백은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모순을 모순으로 직시했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비록 그도 모순의 덫에 걸려 침몰해 버렸지만 말이다.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모순을 모순으로 깨닫지 못하는 길을 걸을 것인가, 모순을 깨닫기는 하지만 그냥 거기에 안주해 버리는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모순을 깨닫고 그를 깨어버리려는 길을 걸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