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그 문장/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바틀비가 자신의 구석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하고 대답했을 때 나의 놀라움, 아니 대경실색을 상상해보라.
나는 놀라서 어리벙벙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즉각 떠오른 생각은 내가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어조로 그 부탁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똑같이 선명한 어조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종전과 같은 대답이 들렸다.
“그렇게 안 하고 싶다니,” 나는 크게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성큼성큼 걸어가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 미쳤어? 내가 여기 이 서류를 비교하게 도와달란 말이야― 이거 받아”하고 그 서류를 그를 향해 디밀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창작과 비평, 60~61p.
내 오래된 취미는 도서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뽑아 뒤적이는 일이다. 《필경사 바틀비》 역시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작품이다. ‘도대체 필경사가 뭐야?’라는 단순한 궁금증으로 펼쳐 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간이 의자에 앉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점잖은 듯 강경한 거절의 문장을 읽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만약 허먼 멜빌이 내 반응을 봤다면 엄청나게 기뻐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해서 반복해서 그 문장을 읽었다. 그 충격적인 문장이 원서에는 어떻게 쓰여 있는지도 찾아보았다. (I would prefer not to.)
밀란 쿤데라는 소설은 실제가 아니라 실존을 탐구한다고 말한다. 실제란 우리가 감각하고 경험하는 외부 세계를 의미한다. 누가 살았고,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시대였는가 하는 역사적이고 물리적 사실들 말이다. 그런데 소설은 단지 그러한 실제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들 속에 있는 인간의 내면적 상태,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방식을 탐구한다. 즉 어떤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몸이 아니라 자세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고 있다.
나는 겉으로는 순종적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부탁이나 명령에 거절하지 못했다. 비록 슬그머니 그만두는 경우는 있었지만, 상대의 앞에서 직접 거절하지는 못했다.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자세는 우리 모두 비슷할 것 같다. 마주하는 문화, 사회, 권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중 8할은 나처럼 순종하거나 순종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다.
상상해 보자. 학창 시절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알려 주었다고 치자.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저는 5단원까지는 공부를 안 하고 싶습니다. 2단원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 고고하게 선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바틀비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런 식으로 거절한다. 서류 검토를 시작으로 필경사의 업무도, 외출도, 떠나는 것도 거부한다. 바틀비의 대담한 거절은 운명 혹은 신에게까지 이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마저도 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는 구치소에 들어간 뒤 밥을 먹지 않고 조용히 굶어 죽는다. 신이시여, 당신은 저에게 생명을 주셨지만 저는 안 살렵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어요.
내가 바틀비의 대답에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나에게도 그러한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점을 처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자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