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소현이 한동안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닫힌 문을 보며 3년 전 현관 앞에 진을 치고 밤낮없이 문을 두드리던 기자들이 떠올라 소현은 몸을 떨었다. 기자들이 갑자기 비상구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이밀 것 같은 불안감에 소현은 몸을 벽 쪽으로 바짝 붙여 앉았다.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인 소현이 할 수 있는 방어라고는 그런 것뿐이었다. 소현이 핸드폰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
“빨리 와주세요. 빨리…. 아저씨. 제발 빨리….”
한참을 핸드폰을 쥔 손을 모으고 기도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소현이 핸드폰에 뜬 김영수 PD의 번호에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디세요?”
‘이제 5분 뒤면 도착이니까 병원 후문 쪽으로 나오면 돼.’
“네.”
전화를 끊은 소현이 조금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계단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비상구 문을 열고 병원 후문으로 향했다. 소현이 후문에 도착하자 비상등을 켜고 있던 하얀 승용차가 소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조수석 쪽 창문이 열리고 영수가 타라는 손짓을 했다. 소현이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리고는 영수의 차에 올랐다. 영수가 소현이 타자마자 병원 출구로 빠져나갔다. 병원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영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되게 긴장감 있었다.”
소현은 지금 자신이 웃어야 하는지, 웃어도 되는지 혼란스러워서 가만히 앞만 보고 앉아있었다. 소현이 반응이 없자 영수는 방금 자신이 농담으로 건넨 말을 후회하며 오른손으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 밥은 먹었니?”
“아니요.”
“그럴 줄 알고 햄버거 사 왔어. 급하게 사느라 그냥 아저씨가 좋아하는 걸로 샀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미리 못 물어봐서 미안.”
“아니에요.”
“그… 저…”
영수가 한참을 망설이다 물었다.
“어머니 상태는… 들었니?”
“아니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이혼했어요. 방송 나가고 나서.”
영수가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그럼 어머니랑 소현이, 둘이 지내고 있었구나.”
“네….”
소현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차 안에는 먼저 입을 떼기 어려운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수는 침묵 사이로 지난 3년 전 취재를 위해 만났던 소현의 가족을 떠올려보았다. 방송의 방향이 무차별 흉기 난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방지할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제 방송본에는 유족들의 인터뷰가 짧게 실리게 되었지만, 실제로 영수는 피해자의 유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얼마나 비탄에 빠져있는지를 생생히 담기 위해 소현의 가족들과 일주일 이상 만나며 많은 장면을 촬영했고, 영수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촬영 당시에 현숙은 소현을 굉장히 원망하고 있었다. 이유는 소현이 이선이가 공격당하고 있을 때 도와주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었는데. 소현을 바라보던 현숙의 핏발 선 눈만큼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오랫동안 꿈에 나올 정도였다. 이선이를 부르며 통곡을 하면서도 소현을 향해 막말을 뱉어대는 현숙과 그 옆에서 현숙의 말에 동의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소현의 아버지. 그런 부모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눈물을 참고 있던 소현의 모습을 영수는 차마 카메라에 담지 못했었다. 말없이 운전하는 동안 해가 지고 두 사람이 탄 차 안으로 노을이 드리워졌다. 영수는 오렌지 색 노을이 내려앉은 소현을 바라보다 말했다.
“아버지 집 주소는 아니?”
“네….”
“그래…. 그럼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일단 아버님 집으로 가자.”
소현은 얕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영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싫어요.”
소현의 아빠인 창섭은 현숙의 소식을 듣고도 소현에게 단 한 번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물론 병원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집에 머무는 게 맞는 걸까. 소현이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잠잠해질 때까지 머무르다가 어머님 상태도 좀 보고….”
영수가 곤란한 표정으로 소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저씨가 연락해서 잘 말씀드릴게.”
소현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가 얕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차 뒷자리에 놓인 햄버거 봉투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래. 일단 저거 좀 먹고, 졸리면 자도 되고.”
소현은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뒷자리에 놓은 봉투를 집어들고는 깨작깨작 씹어 삼켰다. 그러다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때 즈음 소현이 잠들었다. 다 먹지도 못한 햄버거를 손에 쥔 채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로 잠든 소현을 보며 영수가 중얼거렸다.
“다 먹지도 못했네….”
영수는 소현이 말해준 창섭의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들었다. 영수는 잠든 소현이 깰까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나와 창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여러 차례 들리고 이내 무뚝뚝한 창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뷰 안 합니다.’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끊어진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다 영수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 기자가 아니라, 3년 전 뵀었던 김영수 PD입니다. 소현이와 함께 있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금방 다시 전화가 걸려올 것이라는 영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10분이 넘도록 창섭은 연락이 없었다. 영수가 참지 못하고 다시 창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수가 이번에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 마디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창섭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창섭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거는 횟수가 2번에서 5번으로, 5번에서 10번으로 늘어나자 영수가 다시 문자를 남겼다.
‘저 인터뷰 하러 온 거 아닙니다. 소현이 집 앞에 기자들이 있어요.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연락 좀 주세요.’
영수는 창섭의 아파트 앞에서 1시간을 기다렸지만 끝내 창섭에게 답은 없었다. 영수는 길게 한숨을 쉬며 다시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 소현은 이미 깨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반쯤 남은 햄버거 또한 다 먹은 듯 보이지 않았다. 영수는 난처함과 당혹스러움을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아버님도 기자들 때문에 전화를 꺼놓은 모양이야. 연락이 안 되네.”
소현은 이 상황이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더 기운이 생겼다. 그런 소현과는 달리 영수는 고민에 휩싸였다. 다시 소현의 집에 갈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병원으로 돌아가기에도 영수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영수의 핸드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