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살아있다.

3편

by 김초인

혹시 창섭의 전화인가 싶어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현아, 잠시 아저씨 통화 좀 하고 올게.”

소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하고는 차에서 내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 민철이 말했다.

‘밖인 거 같은데.’

“무슨 일이야.”

짜증 섞인 영수의 말투에 민철이 쩝 입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너 혹시…… 대한병원이냐?’

“아니야.”

‘일단 회의실로 돌아와라. 할 얘기도 있고.’

“지금은 못가.”

‘왜?’

“그게…….”

‘새끼. 대한병원에 있는 거 맞네.’

“아니야. 그게 아니라…….”

영수가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으며 차 안에 표정 없이 앉아있는 소현을 바라보았다. 민철이 늘어지는 말투로 영수에게 말했다.

‘아니면 뭐냐고. 새끼야. 답답하게 할래?’

영수가 민철의 닦달에 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게…… 소현이랑 같이 있어. 이선이 언니.”

전화 너머로 라이터를 켜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깊게 숨을 내쉬며 민철이 말했다.

‘소현이가 그 소현이었구만. 그래서 뭐 독점인터뷰라도 하려고?’

“그게 아니라…….”

영수가 상황을 설명할 말을 고르는 사이 소현이 차에서 내렸다. 영수가 차에서 내린 소현을 보고 놀라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끊고는 말했다.

“어, 소현아. 왜 내렸어. 차에서 기다리지.”

“저기, 연락 왔어요.”

“아버지한테서?”

“아뇨.”

소현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병원에서요.”

“병원?”

“엄마가…… 깨어났대요.”

*

영수는 병원으로 돌아가며 알 수 없이 무거운 마음과 동시에 자신이 소현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괴로웠다. 3년 전에도, 지금도 소현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결국 영수는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도움을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영수의 마음을 송곳처럼 찌르고 있었다. 대한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소현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소현은 자신이 어쩌면 엄마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난 후 소현은 다시 혼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드는 한편, 자신이 한 생각에 대한 죄책감에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영수와 소현은 서로 의식하지 못한 채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차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대한병원 건물이 보이자 영수가 말했다.

“오늘, 도움이 못 되어준 것 같아 미안하네.”

소현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영수의 차가 대한병원의 정문을 지나 후문으로 향했다. 영수가 차를 세우고는 말했다.

“괜찮아질 거야. 소현아. 혹시라도 또 도움이 필요하면…….”

영수는 문득 자신이 도움이 되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을 끝내지 못했다. 소현이 영수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잠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작게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소현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한병원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던 영수가 다시 차를 돌려 병원을 빠져나왔다. 영수가 복잡한 생각을 벗어나려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와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영수는 그 소리도 거슬려 이내 라디오를 껐다. 여전히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도착한 영수가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영수가 중얼거렸다.

“이 한심한 놈. 오지랖만 넓은데 능력은 없는 놈.”

한참을 중얼거리던 영수는 그날 밤 꿈에서 현숙을 보았다. 현숙의 옆에는 희미한 작은 아이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얼굴이 모자이크가 듯 흐리게 보였지만 영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선이구나.’

꿈속에서 현숙과 이선은 손을 맞잡고 웃고 있었다. 영수가 어쩐지 무거운 입을 떼고 물었다. 영수의 목소리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웅웅 거리며 울렸다.

“소현이는요?”

그때 현숙이 무표정하게 영수를 홱 바라보더니 오른손 검지를 올려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 위에 올렸다. 영수가 다시 한번 소현이의 행방을 물으려 하자 현숙이 핏발 선 눈으로 영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영수가 몸을 떨며 그곳을 벗어나려 하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현숙이 후후 웃었다. 그 모습을 끝으로 영수가 몸을 비틀며 꿈에서 깨어났다. 영수는 자신의 목에서 흐르고 있던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이제 오십니까.”

영수가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민철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영수가 민철의 말에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영수가 맞은편에 앉은 미진에게 말했다.

“어제는 죄송했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

미진이 무언가 말하려는데 민철이 끼어들며 말했다.

“어제 미진작가가 너 가고 나서 얼마나 툴툴거리는지.”

미진이 민철의 말에 얼굴이 발개져서 말했다.

“아녜요.”

민철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펜으로 자신의 입술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아니긴 무슨.”

미진이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화제를 돌리려 말했다.

“참, 영수PD님. 새로운 기획안이에요.”

영수가 미진이 건넨 기획안을 받아들었다. 민철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의자를 빙글 돌리고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민철은 영수가 꼼꼼히 기획안을 읽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진과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미진이 약간 긴장한 듯 목을 몇 번 가다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AI 기술이 굉장히 발달해서 고인이 되신 분의 사진과 음성 파일이 있으면 생전 모습과 유사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해요.”

영수가 여전히 기획안을 훑어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네.”

“이 기술로 인해서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이나…….”

미진이 뒷 말을 하지 못하고 웅얼거리다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민철을 바라보았다. 민철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그걸 AI 복원기술이라고 부른다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다는 거지.”

영수가 기획안을 덮고는 말했다.

“먼저 AI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알아봐야겠네.”

민철이 말했다.

“근데 난 좀 공감이 안 돼서 말이지.”

“무슨 공감?”

“좀 그렇잖아. 단어부터, 뭐랄까.”

민철이 씁,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산 사람 마음 편하려고 돌아가신 분을 관에서 다시 꺼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복원. 복원? 복원이라는 단어도 좀 와닿지 않는다- 이 말이야.”

“그럼 먼저 기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이 기술을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좀 해야겠는데.”

“그래서 말인데.”

민철이 민철답지 않게 뜸을 들이자 영수가 물었다.

“그래서 뭐?”

“어제 그, 이선이 어머님 의식 되찾았다며.”

“그 얘기가 왜 나와?”

“원하지 않을까?”

민철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영수가 되물었다.

“뭘?”

“이거. 이 기술 말이야.”

민철이 가지고 있던 기획안을 들고 흔들어 보이자 영수가 단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영수의 반응을 예상한 듯 민철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거 괜찮은 소재야. 아직 불완전한 AI 기술에 대해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AI 기술이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우리가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달렸는데…….”

미진이 민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물론 유족들이 동의할지 안 할지가 제일 중요하지만, 제안은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진작가님까지…….”

영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민철이 말했다.

“미진작가 말이 맞아. 할지 말지 정하는 건 그분들 몫이고 우리는 제안 정도 해볼 수 있지 않냐는거지. 지금 전기료 오른다는 기사보다도 이 사건이 더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대중 관심받자고 가족 잃은 사람을, 그 슬픔으로 세상을 등지려고 한 사람을 또 방송에 세우자고? 그리고 형도 방금 말했잖아. 죽은 사람 다시 관에서 꺼내는 것 같다며. 그걸 내가 어떻게……. ”

“그게 아냐. 임마.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장면을 찍자는 거야.”

“필요한 기술?”

“네가 아까 말했던 기술을 원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봐. 그리고 그냥 제안만 해보자고. 제안만.”

영수가 머리가 아픈 듯 양손을 관자놀이에 올리고는 문질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민철이 말했다.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야. 이선이 어머님 상태도 정확히 모르고……. 여하튼, 천천히 생각은 해봐라.”

영수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미진이 말했다.

“AI 복원 업체 몇 군데 연락을 해봤는데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업체는 두 곳이에요.”

미진이 민철과 영수에게 리스트를 건넸다. 민철이 먼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출발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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