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살아있다.

7편

by 김초인

소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소현이 생각했다. ‘편의점은 1층인데 기자들이라도 마주치면 어쩌지.’ 소현이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소현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 생각난 듯 간호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호사실 앞에 다다르자 안쪽에서는 간호사들의 얘기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소현은 그 주변을 서성이며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간호사 몇 명이 급한 일이 생긴 듯 간호사실을 나왔다. 소현이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간호사를 부르려고 손을 뻗었다가 이내 손을 내리고 교복 치마를 쥐었다. 소현은 다시 간호사실 앞을 배회하며 기다렸다. 그때 진아가 간호사실을 나왔다. 소현이 어딘가 낯익은 얼굴에 좀 더 용기를 내 진아를 불렀다.

“저기요.”

진아가 소현을 보지 못하고 걸어가다가 작은 목소리에 주변을 돌아봤다. 소현이 다시 한번 작은 목소리로 진아를 불렀다.

“저기.”

언제나 환자와 보호자에게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하는 진아였지만 소현에게는 노력하지 않아도 연민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로 물었다.

“어머, 뭐 필요하신 거 있어요?”

“저기 혹시 충전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소현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는 수준으로 작게 들려서 진아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집중했다.

“충전기요?”

진아가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되묻자 소현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가 ‘잠시만요.’하고는 간호사실로 다시 들어갔다가 충전기를 들고 나왔다. 충전기에는 ‘이진아’라는 작은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소현이 감사의 표시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진아는 그 모습을 보며 동료 간호사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직 이렇게 어린데…….’

소현이 허리를 펴고 어정쩡하게 선 채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릴게요.”

진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녜요. 전 밑에서 하나 사면 돼요. 그냥 보호자님 가지세요.”

“네? 아니, 아니에요. 잠깐만 쓰고 바로 드릴게요.”

“진짜 괜찮아요. 편하게 쓰세요.”

진아가 당황해하는 소현의 모습을 보며 ‘귀엽다.’라고 생각했다. 소현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감사합니다.’하고 작게 말했다. 진아가 보일 듯 말듯 작게 미소짓고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인사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진아가 다시 뒤를 돌아 소현을 불렀다.

“보호자님!”

소현이 병실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진아를 바라보았다. 진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 저기… 유튜브는 보지 말아요. 당분간이라도.”

소현은 진아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미 3년 전에 모두 겪었던 폭풍인데도 소현은 자신이 땅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현이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진아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아는 소현의 반응에 ‘괜히 말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잊었다. 소현이 병실로 들어가자 현숙이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 그게……. 1층엔 기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간호사 선생님한테 빌려 오느라.”

현숙이 ‘기자’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이고 물었다.

“기자? 기자가 많이 왔어?”

“어? 응…….”

현숙이 하하 웃고는 말했다.

“어서 충전기랑 핸드폰 줘봐.”

현숙의 말에 소현이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에 들고 있던 충전기와 함께 현숙에게 건네주었다. 핸드폰이 다시 켜지는 동안 현숙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었다. 소현이 현숙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분간 유튜브는 보지 말라셔.”

현숙은 소현의 말은 전혀 못들은 듯 핸드폰이 켜지는 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낚아채고는 무언가 찾는 듯 한동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어딘가 들떠 보이던 현숙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몇 분 뒤 현숙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는 분이 안 풀리는 듯 씩씩거리며 다시 한번 ‘아악’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소현은 현숙의 첫 번째 비명에 놀라 의자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가 두 번째 비명에는 뒷걸음질을 쳤다. 현숙이 쓰러졌을 때 소현은 세상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선 채로 바닥에 엎어진 현숙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현이 멍하게 입을 벌리고 모든 행동을 멈춘 순간 현숙이 던진 핸드폰에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 집중했다. 소현이 쓰러진 현숙을 뒤로하고 천천히 핸드폰 쪽으로 걸어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깨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심하게 깨진 탓에 핸드폰 화면의 반 이상이 검게 보였지만 강현철의 입만은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이 깨진 핸드폰에서는 강현철이 억울하다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전 억울해요. 사회가 절 이렇게 만든 거라니까요?’

소현이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강현철의 입을 발로 밟았다. ‘제발. 제발. 이제 멈춰.’ 소현이 있는 힘껏 핸드폰을 발로 밟으며 흐느꼈다. 이내 강현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소현이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안았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병실에서 들리던 비명소리에 간호사 몇 명이 달려왔다. 쓰러져있는 현숙과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숨죽여 흐느끼고 있는 소현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간호사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현숙의 혼절 이후 간호사실이 소란스러워졌다. 1인실 수간호사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누구야. 누가 이현숙 환자 핸드폰 보게 했어.”

간호사들끼리 눈치를 보며 말이 없자 수간호사가 다시 소리쳤다.

“지금 병원 뒤숭숭한 거 안 보여? 다들 정신이 어디가 있는 거야. 제정신이냐고. 다들.”

간호사들이 무거운 분위기에 고개를 숙이고 연신 ‘죄송합니다.’ 말했다.

“하,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해. 절대로 밖에 나가게 하지 마. 다들 메시지. 그놈의 메시지 조심하고.”

간호사들이 ‘네.’하고는 어두운 목소리로 답했다. 수간호사가 짜증을 담아 깊은 한숨을 쉬고는 간호사실을 나가며 말했다.

“제발 정신 놓고 살지 말자. 다들. 어? 부탁 좀 하자.”

수간호사가 나가자 간호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여기저기서 참았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샐쭉한 표정의 간호사 한 명이 말했다.

“우리가 보여준 것도 아닌데. 딸래미가 보여준 걸 우리가 어떻게 말려.”

“만만한 게 우리야. 그냥 화풀이하는 거지. 뭐.”

“왜 우리 병원에 입원해서 난리야.”

“그러니까. 가뜩이나 일 많아 죽겠는데.”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불만을 말할 때 진아는 죄책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때 예민한 인상의 간호사가 말했다.

“근데 핸드폰 충전기, 진아쌤이 빌려주지 않았어?”

그 말에 다른 간호사들이 동조했다.

“맞다. 아까 낮에 빌려주는 거 나도 봤어.”

“그걸 왜 빌려줘서는…….”

진아가 얼굴과 목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진아와 동기인 수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빌려준 게 무슨 죄에요. 애초에 당분간 핸드폰 보면 안 된다고 고지 안 한 담당 선생님 잘못 아니에요?”

“야. 싸우자는 거야?”

“그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잖아요. 왜 생사람을 잡냐고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수정 옆에 서 있던 진아가 수정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만해. 수정아. 내가 잘못했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아가 허리를 숙이며 말하자 긴장됐던 분위기가 잠시 풀렸다. 다른 간호사들이 진아의 사과를 받은 후 체념한 듯 말했다.

“진아쌤이 무슨 잘못이야. 됐어. 어쨌든 우리끼리는 입조심 하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진아는 그 분위기가 불편해 간호사실 밖으로 나갔다. 수정이 머뭇거리다가 진아의 뒤를 따라갔다.

*

회의실로 돌아온 영수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멍하게 수첩에 무언가 적고 있는 영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미진이 조심스럽게 영수의 수첩을 보았다. 수첩에는 ‘열쇠’라는 단어가 여러 번 적혀있었다.

“열쇠?”

미진이 소리 내어 물었다.

“그게 뭐예요?”

영수가 미진의 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나 정신이 든 표정으로 말했다.

“아, 별거 아니에요.”

“그렇다기엔 이렇게 많이 쓰셨는데…….”

미진이 영수의 수첩에 손짓하며 말했다. 영수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니에요.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미진은 궁금증이 남은 표정으로 영수와 수첩을 번갈아 보았지만, 그 이상 묻지 않고 말했다.

“민철PD님은 오고 있다고 하는데, 지방이라 차가 많이 막히나 봐요.”

“네. 그럼 저희끼리 먼저 얘기하고 있어야겠네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먼저 인터뷰 영상부터 보고…….”

미진이 잠시 말을 멈추고 영수를 바라보았다. 영수는 미진이 말을 멈춘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다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미진이 열었던 노트북을 덮고는 말했다.

“PD님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미진의 말에 영수가 자세를 바로 앉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 아까 하시던 말이 뭐였죠?”

미진이 영수를 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잠을 좀 설쳐서 그런가 봐요.”

“……PD님이 정 많고 정말 착한 분이라는 거 알아요.”

“네?”

“3년 전 사건, 피해 유족에게……. 특히 그 가족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가끔은 남 말고 PD님, 본인한테도 신경 쓰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정말 도움이 되고 싶다면 PD님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수는 미진의 말에 명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저희의 본분은 시청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경각심을 주는 거라고 전 생각해요. 사람들은 또 금세 잊으니까 잊혀지면 안되는 사건을 다시 알릴 수도 있고요.”

미진이 눈이 동그래진 영수를 여전히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작게 말했다.

“그냥 제 생각이에요.”

“그러네요. 작가님 말씀이 맞아요.”

‘그게 제 일인데.’ 영수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오늘은 민철PD님도 없고, 내일 다시 얘기해요.”

영수가 자신의 수첩에 군데군데 적힌 ‘열쇠’라는 글자에 시선을 두며 ‘그러죠.’하고 대답했다.

작가의 이전글동생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