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쟁이란 있는가?

(사진 AI제작)

by 김문수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며 특정 전쟁을 옹호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를 위한 전쟁이 있는가? 정의로운 결과가 실현된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실질적 목적이었는지 따져 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우리는 세계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자본임을 안다. 자본이 없으면 곧 국가가 망한다는 공식 또한 사실상 성립한다. 즉 모든 국가는 좋든 싫든 그것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자본과 시장논리, 이념 등의 복합적 요소의 작용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외교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들 역시 많이 개입하나, 자국의 이익 증진이라는 기본적 목표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돌아와서, 다시 대답해 보자. 정의를 위한 전쟁이 존재하는가? 우선 전쟁은 아주 기본적으로 군인/민간인들을 하나의 고귀한 인격체가 아니라 기계의 별 볼 일 없는 소모품 따위로 전락시킨다. 이미 이 점에서 전쟁은 그 행위 자체로 옳지 않다.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직업인 점에는 상당히 반박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군인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한다.
방어적 전쟁은 이미 침략국에게 기본적인 책임이 있고 침략당한 국가는 국민 안전 보장을 위한 행위로써의 전쟁을 어쩔 수 없이 치르는 것에 해당하므로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어쩔 수 없는 행위에 가깝다. 이것이 자국민 보호를 위한 정의로운 행위라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해 최소화를 위한 선택에 해당한다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러나 침략적 전쟁은, 어떤 명분을 달았건간에 앞서 설명했듯 거대한 세계의 시장에서의 이익/정치적 이해관계/역사적 배경 등이 주가 된다. 이 셋 중 그 어느 것도 인간의 권리를 삭제에 가까울 정도로 약화시킬 만한 이유는 아니다. 이해관계의 경우, 그것은 어디까지니 정치권에서의 외교나 대화 등의 활동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무력을 사용한다면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역사적 배경 또한 그렇다. 우리나라가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에게 억압받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빌미로 그들을 공격할 수 있는가? 이 주장에 동의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슷하게, 역사적 배경은 얽힌 국가들이 보상/배상, 외교, 공동 사업 등을 이용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해당한다. 만일 국가의 시초적 영토를 찾는다는 등의 상당히 위대해 보이는 이유라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종속되어 현재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감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라면 어떨까. 우리는 십자군 전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전쟁은 참담한 패배로 끝났으며, 자진 참전한 청소년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등의 비윤리/반교리적 행위도 이루어졌다. 다만 이 전쟁의 진정한 동기는 종교보다는 권력에 의한 것임을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십자군 전쟁처럼 애초에 그 성격이 비윤리적인 전쟁이 아니더라도, 종교적 이유에 의한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그 '종교'의 세계에서만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 전쟁은 비종교인에게도 피해를 주며, 신의 뜻이라는 이름 하에 신도들을 죽음이 가득한 전장으로 밀어 넣는 꼴이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 영역이지, 타인의 생명에 개입할 권한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 갈등에 대해서도 서로 조정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일부는 과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등의 대량 학살과 같은 극단적 상황 해결을 위한 전쟁을 정의로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전쟁은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순수히 정의로운/정의를 위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의 목적이 정의였던 적은 없으며, 개별 국가의 이익, 보복 등의 이유가 더욱 크게 작동한다. 인권의 추락과 민간의 고통스러운 삶, 국제 경제의 흔들림 등의 오점이 남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의 명분이 아니라 실제 목적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