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연락이 와 있다. 몇 년지기 친구이니 평소 종종 연락을 하는 사이지만 이런 심야 시간대에 연락한 적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동네의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서울까지는 대략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나는 멀미약 한 갑을 사 귀 뒤에 붙였다. 무슨 일인지 짐작되지 않아 뒤숭숭하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두 번 다녀왔다. 전날부터 속이 쓰라렸던 탓도 있었다.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럴 때가 있었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이라는 요소가 있다지만 우리가 몸을 뒤집어 본다면 그 반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것이 별다른 이유가 없으리라, 어쩌면 무언가를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넘겨짚어 보았다. 버스에 사람은 많았으나 마침 두 자리 다 빈 좌석이 남아 거기에 앉았다.
창밖을 내다보며, 버스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드레일과 버스 전용 고속도로 이외의 차선을 달리는 차들, 도로를 닦기 위해 깎은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철망이 세워져 있으므로 흙더미가 밀려 내려오진 않을 것이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 도로 밑과 위를 가로지르는 통로가 있을 테고, 그 길로 동물들이 다닐 수 있을 테다. 그럼에도 자동차 경적 소리와 사고나는 소리 등등의 잡다한 것들이 그들의 안위를 위협함은 여전히 분명하게 보였다. 깎인 산과 철망은 서울에 진입하기 바로 전까지 이어졌다. 황토색으로 누렇게 말라 버린 땅들이 마음에 걸렸다. 서울쯤 들어서니 가드레일이 높아졌는데, 그것은 주민들에게 소음 공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들었다. 한강대교가 웬일로 붐비지 않아 예상보다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너의 집은 한강이 보이는, 그 값비싼 집들 뒤에 감춰져 있는 후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균 이상이라 보기에 애매한, 그런 동네에 있었다. 이제 보니 평균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규모다. 골목길들에 널린 종량제 쓰레기 봉투와 오토바이, 그리고 전단지들을 구경하면서 지나가다 보면 일 층 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나는 페인트가 이리저리 벗겨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초인종이 없어서 그런지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다. 좁은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바람을 받아 살짝씩 펄럭거렸다. 너의 이름을 부르며 집에 있느냐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문을 두들겼다. 문을 세 번째 두들기는 순간, 대문과는 달리 현관문 옆에는 초인종이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약간 부끄럽지만 이제 와서 누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너는 남루함과 깔끔함이 혼재되어 보이는 착장을 하고 나를 맞이했다. 청바지에는-디자인을 챙길 양으로 그런 거겠지만-실밥이 튀어나온 곳이 있었고, 셔츠에 만지 자국이 튀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잠시 놀라 주춤했다가 이내 진정하고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하며 인사를 건넨 뒤, 부른 이유가 뭔지 물었다. 너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마당 한구석에 찌그러지듯 박혀 있는 작은 곤충 채집용 상자를 가르켰다. 저게 뭐가 문제인가 싶었으나 일단 가서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귀뚜라미 서너 마리가 바쁘게 기어다니고 먹이로 보이는 밀웜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야 네가 곤충 사육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통 가장자리에 껍데기만 남은 밀웜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한때 속이 찬 채로 돌아다니다가, 사육장으로 옮겨진 후, 이 통이라는 새 집에 들어와 저리 비어 버리게 된 것이다. 마침 귀뚜라미가 다른 밀웜 한 마리를 파먹기 시작한다. 껍데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했다.
내가 알기로, 귀뚜라미는 저런 것을 잘 먹지 않는다.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만무한데 왜 굳이 그렇게 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너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도통 마땅한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통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너에게 다가갔다.
저게 왜.
어, 그러니까, 뭔가 이상해.
뭐가?
그걸 모르니 너를 부르지.
순간 겨우 저것 때문에 나를 불렀나 하며 기가 찼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저 귀뚜라미는 너의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유일한 자산이었다. 물론 자산이라고 칭하기에도 너무나 빈약해 보이지만, 함부로 유품의 가치를 따질 수야 없으므로 알겠다며 대충 수긍했다. 너는 머리를 귀 뒤쪽으로 넘김과 동시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집을 향해 뻗어나간 고속도로 위를 택시를 타고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