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평범한 가정집에 웬 요상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새로 만드는 작업물의 참고용일까. 나는 너의 사진만 한 장 챙겨-그것을 담을 조그만 종이 봉투도-너의 집에서 나왔다. 스산하지도 밝지도 않은 색채의 집. 익숙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그 특유의 느낌은 전혀 찾어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네가 방치했는지 귀뚜라미들은 그 작은 생태계 아닌 생태계에서 서로 잡아먹고 있었다. 제법 크기가 큰 놈이 있었는데, 다리 한 쪽이 뜯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치로 다른 멀쩡한 개체를 압도했다. 내가 그들의 신체적인 무언가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점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매섭다. 가을인데도 이 정도라면,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지 감마저 잡히지를 않는다. 너는 지금쯤이라면 아마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있겠지. 나는 네가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해 보며 욕조의 온수에 몸을 담궜다. 쇄골 아래까지가 전부 잠기도록 했으므로 숨이 잘 쉬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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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의 코르크를 따고, 소줏잔에 따랐다. 대충 45밀리리터쯤 되던가. 아주 천천히 그것을 여러 차례 나누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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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욕실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뜨거운 물의 김으로 가득 찼다. 거울에도 김이 서려 손가락으로 그림을 대충 그려 볼 수 있을 법했다.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나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란 눈 두 개에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을 하나 그렸다. 얼굴은 그리지 않았다. 이모지 같은 그 표정만이 거울 속에 둥둥 떠다녔다. 나는 만족스레 한숨을 쉬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좋아하는 외국 노래였는데, 가수가 2010년대의 말에 사망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에게 그것은 크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가수가 아니라 그저 그 노래를 좋아했으므로, 그 가수의 다른 노래들은 들어 보지도 않았으므로 그런 듯했다. 이 곡을 알게 된 것도 2026년의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친구가 남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없느냐며 일갈하기도 했지만 가까운 친척의 죽음에도 별 생각 없었던 내게는 그저 귀찮은 잔소리에 불과했다. 너도 아마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독특하다’ 아니면 ‘그럴 수 있겠다’ 아니, ‘왜’ 라고 물었던가. 대답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이어진 너의 말은 ‘그런데 뭐, 내가 딱히 간섭할 일은 아니네.’ 였다. 이 기억은 분명했다.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나에게 교정할 문제는 없다는 것이겠지. 조금 지나 몸을 닦고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으니, 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꼼짝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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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너의 인사는 닿지 않았다. 늘상 있던 일이지만 그 늘상의 때마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차오르는 것이었다. 상사는 구두 소리를 아주 일관된 박자로, 어쩌면 진동수가 맞아 너의 머리가 깨질 지도 모르는 그 박자로 걸어갔다. 다른 동료들의 인사도 잘 받지 않으니, 기본적인 무언가가 부족한 사람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상사다. 직속인지 아닌지 고사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났음을 인정받았을 테다.
구두 소리가 아직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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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사진을 들고 산에 올랐다. 동네에서 도보로 이십 분 정도를 걸어가면 나오는 산이다. 오던 길에 깨진 버덜럭들이 많았다. 그 틈새로 이끼나 작은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이 산은 그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이가 낮고 나무도 잘 없다. 산보다는 언덕에 가까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의 사진을 정상의 오래된 은행나무-아마 300년쯤 된 나무일 것이다-의 가지에 너의 사진을 걸었다. 원래는 불법이나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원을 매달아 두고 갔다. 이이 대해 한 주민이 항의한 일이 있었는데, 나이 든 공무원의 헛기침만 두어 차례 듣고 돌아온 것이 끝이었다. 그 이외의 항의나 청구가 없었으므로 나무는 언제나 그 상태를 유지했다. 내 생각에, 그것들을 전부 떼어내는 것이 옳은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도 트집 잡지 않는다. 누구는 희망을 걸어 두었으니 해선 안 된다며 법과 반대되는 주장을 했고, 누군가는 뭘 그런 걸 신경쓰냐며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았다. 또 누구는-아마 산의 관리인 중 한 명-그 나무를 보며 참 예쁘다 감탄했었다. 변할 것이 없어 보였으므로 나는 나무의 고리들을 문제 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