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관계를 그리워하는 당신에게

9월 2일의 악필 편지

by 낮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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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들 합니다. 그게 좋은 소리가 되었든 나쁜 소리가 되었든 말이죠. 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관계는 상호작용이며, 내가 하는 행동은 상대방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관계라는 것의 본질을 고민해본다면, 더 행복한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전 애인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저는 몰라요.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왜 헤어진 이를 그리워하는지도 저는 몰라요. 다만 조심스레 넘겨짚을 수 있을 뿐입니다. 상처를 받는 관계에 당신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당신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 익숙함이 아닐까 하고요. 당신이 선택한 상호작용은 상처에 익숙해지는 것이었겠지요. 선택권은 많지 않았을 것이고, 그 다른 선택 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겠지만요.


익숙함은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이 좋은 것이라 믿게 만듭니다. 그래서 불행한 관계에 익숙해지면 불행한 관계를 찾아 헤맵니다. 자신이 겪은 관계에 적응했으니까요. 그 익숙함을 찾아 사람과의 관계에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끝내는 익숙한 상황을 재현해서 똑같은 상처를 받곤 하지요. 그리고 그 상처로 말미암아 관계를 떠나고, 다시 또 같은 익숙함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소설 <죄와 벌>에서는 세묜이라는 알콜 중독자가 등장하지요. 가족의 헌신으로 겨우 취직에 성공한 그가 다시 주정뱅이로 길거리에 나앉은 것을, 저는 세묜이 불행이 주는 익숙함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또한 가족에게 헌신적인 가장이기보다는 무능하고 비열한 한량으로 취급받는 관계에 익숙했기에, 그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술에 손을 댔겠지요.


저는 당신이 불행이 주는 익숙함에 속지 않기를 바라요. 모든 것은 처음에는 낯선 법이고, 행복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낯선 행복을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따금 찾아오는 행복 앞에서도 불행을 선택하기 쉬우니까요.


익숙한 불행에서 벗어난 당신의 외로움과 불안을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당신에게 행복을 연습할 여력마저 없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당신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지금까지 불행했던 만큼, 나는 또 행복할 수도 있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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