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사랑한 당신에게

8월 19일의 악필 편지

by 낮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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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환상으로 시작해 그 환상이 소진되는 순간 끝을 맞이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끝은 다양한 모습일 거예요. 이별일 수도 있을테고, 결혼일 수도 있을 겁니다. 여전히 연인으로 남더라도 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연인으로 남겠지요. 환상을 한 꺼풀 벗어내고, 나와 상대가 온전한 존재와 존재로서 만난다는 것은요.


달리 말하면 연애의 시작은 충만한 환상일 거예요. 이 드넓은 세상에서 오로지 서로만이 서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지요. 실제로 행복한 시간도 있었겠지만, 나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시간도 있을 겁니다. 그 환상을 끝끝내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건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만난 당신들이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일은 그 환상을 벗겨내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해요. 지금까지의 익숙한 환경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었을테고, 그래서 오랜 시간 사랑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도 바뀌기 마련이지요. 원하는 것이 달라질테고, 그걸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거예요.


저는 이것이 연인이라면 언젠가는 거쳐가야 할 문턱이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했던 모습만으로 상대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까지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런 모습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인연을 정리할 수도 있겠죠. 냉정한 판단이라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내 환상을 충족시켜 줄 다른 사람을 찾아 도망치는 게 아니라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대로, 또는 미워하고 싶은대로 자꾸 우리의 시선을 비틀거든요. 헤어짐을 앞두고 당신이 직면한 어려움은 아마 비슷한 것이었으리라고 저는 감히 생각해요. 이쁘든 밉든, 있는 그대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마주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부단히 애쓴 것 같아요. 그렇게 고생하느니 잘 헤어졌다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또 내가 이렇게 노력한 걸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당신의 모습이 저는 그렇게 보여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처음이었던 그 연애를 유지하는 일이요. 미답의 길을 처음 걷는 것 같았을 텐데.


저는 당신이 이 이별이 관계의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기를 바라요. 환상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는 일을, 당신은 처음 경험해보았을 뿐이에요. 누구나 서투르고 어색한 그 처음의 순간을 당신은 최선을 다해서 보냈어요. 그 경험은 당신을 좀 더 단단하게 가꾸어 나가겠지요. 당신의 연인을, 그리고 당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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