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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Oct 28. 2021

세상의 모든 O에게

10월 28일의 악필 편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들만큼 올곧게 사는 게 아니더라도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선악의 구분은 흐릿해지지요. 졸업을 하고, 돈을 벌고, 삶이 복잡해질수록 그 삶에는 피할 수 없이 나쁜 것이 끼어들 게 됩니다. 그걸 적당히 묵인하는 편이 최선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게 삶을 덜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악을 묵인하는 일이 반복되면 그 묵인이 우리의 삶을 정의하게 됩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할 리도 없고, 이런 걸 불편해하지 않을 리도 없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기를 쓰고 근거 없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느니,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속이 편하거든요. 그리고 그 악행이 최선일 때도 있기 마련이고요. 


 당신이 하는 일도 당신의 최선이겠지요.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요. 마스크 뒤에 숨어 시키는 기계처럼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의 어느 악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더라도, 그 묵묵함이 당신에겐 목숨을 건 투쟁일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일어나더라도 그 반발이 참 하찮은 끝을 맞고 말 것임을 알 때, 누구도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거예요. 어찌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욕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요. 당신에게 주어진 악행을 행하더라도 당신의 마음까지 그에 동의하지는 않기를 바라요. 먹고 사는 일의 사슬에 얽혀 그로 인해 오늘 하루의 밥을 빌어먹고 살더라도, 지금 내가 떠넘기는 한 술의 밥이 누군가의 핏값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요. 그래서 어느 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 때 주저없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저는 일면식도 모르는, 그걸 알 수도 없는 당신에게 참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견디지 못합니다. 인지부조화라고 하지요. 나쁜 일을 하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나의 삶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냥 내가 나쁜 사람이니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그렇게 변화의 가능성도 사라지지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요. 


 매일 밤 더러운 손을 씻고 침대에 몸을 누일 때마다 당신은 이미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 맞는 건지요. 때로는 믿음이 행동을 이끕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요, 라고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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