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별 Mar 31. 2022

감정을 숨기는 당신에게

3월 31일의 악필 편지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들을 만나곤 합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대개 그런 것들은 준비만 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걸음마를 배우는 일이 그렇겠지요.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 일, 걷고, 뛰고, 친구를 만나 뛰어노는 일이 그럴 겁니다. 누구든 준비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 대신 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감정을 다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먹기 싫은 것도 있고, 딱딱해서 씹기 힘든 것도 있지요.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도 없고, 허겁지겁 먹다간 체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잘 씹어 삼킨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피와 살이 됩니다. 우리를 성큼 자라나게 하지요. 


감정에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은 그 뿌리가 마음의 가장 낮은 곳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우울하다고 말했지요. 당신을 짓밟은 사람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도 말했지요.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무덤덤할 수도 있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몰라요. 드넓은 감정의 파노라마에서 다름아닌 아닌 분노와 우울을 선택하고 그걸 감추려 애쓰는 당신의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제가 몇 줄의 편지만으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상해볼 수는 있지요. 분노와 우울을 감추기 버거워 어떻게 하면 감정을 버릴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당신을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약점을 드러내느니 그 감정들을 어떻게든 도려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 온 걸까요? 짓밟히고 상처받으며, 화나고 슬픈 마음도 애써 숨기며…


저는 감정을 숨기는 가면의 뒤에 상처받은 한 아이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상처로 말미암아 슬플 때는 울고, 화날 때는 소리치면 된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린 아이가요. 소화되지 않은 감정은 가슴 속에서 썩어버리고 맙니다. 그걸 홧병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아이는 누군가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주길 바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들을 잘 씹어 삼킬 수 있도록, 슬플 때 슬퍼하고 화날 때는 화를 낼 줄 알되, 그 감정에 흔들리지는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요.


물론 이 아이는 제 상상 속의 아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아이가 그렇듯 당신의 감정들도 무언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를 들어 주세요. 당신의 분노와 우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귀를 기울여 주세요. 그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당신의 마음도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질 수 있겠지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해낼 수 있는 일이리라 믿어요. 우리에게 한때는 걸음마를 배우는 것 또한 그러했으니까요.




개인 사정으로 한동안 휴재하였습니다. 편지를 기다리신 분이 혹여 계시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다시 매주 목요일 악필 편지로 찾아뵙겠습니다.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작가의 이전글 자존감이 낮아 고민하는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