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의 악필 편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저는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적나라한 표현을 쓰자면 아싸였지요. 글쓰기 모임을 비롯한 취미 활동은 꽤 활발하게 했었고, 그런 곳에서 저를 만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믿기 어려워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낯을 가리는 방식이 독특했지요. 제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장소에서는 사교적이었지만 낯선 곳에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런 곳에서 적절한 행동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대개 그런 곳은 구성원들의 역할과 규칙이 중요한 조직이었습니다. 학교나 아르바이트를 했던 회사, 군대 같은 곳이었지요. 그런 곳마다 내내 겉돌며 생활했던 기억들은 한동안 제가 집단 생활에는 평생 적응하지 못하리라고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저는 그럭저럭 무난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게 남들보다 뒤쳐지는 편이었던 사회성이 20대 중후반을 거치며 뒤늦게 발달했던 덕분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넘겨짚습니다.
사회성이 내가 속한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이라면,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낯선 환경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느냐도 사회성의 큰 부분이겠지요. 익숙하고 좋아하는 환경에서라면 누구든 잘 적응하고,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건 나는 어디서든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그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에서부터 비롯하겠지요.
그렇다면 어린 시절 자신감을 쌓을 수 없었다면, 영영 어디를 가든 겉도는 아싸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제 경우를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남들은 일찍 겪은 시행착오를 느지막하게 겪었을 뿐입니다. 대학교 MT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군대 선임과의 대화에서 저도 당신처럼 수많은 ‘갑분싸’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낯선 상황에 적절하게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몰라 일어났던 해프닝들이었지요. 그 경험들은 고스란히 피가 되고 살이 되었습니다. 같은 실수로 또 갑분싸를 만들 때도 있지만, 그게 서너 번씩 반복되는 일은 드물었지지요.
그러니 대학 생활을 좀 겉돈다는 것만으로 너무 걱정하지는 않기를 바라요. 누구나 모자란 부분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고, 그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연습에서도 얼마든지 통용됩니다. 당신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당신은 좀 더 넘어질 겁니다. 말실수로 또 갑분싸를 만들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실수들이 당신을 좀 더 단단하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거예요.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느 정도만큼은 모자랄 것이고, 때때로 낯선 것을 마주해야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언제고 낯선 곳을 향해 휘청휘청 걸음을 떼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당장의 길을 더 잘 걷느냐보다, 서툰 걸음이더라도 용기있게 걸어나갈 수가 있느냐가 더 중요할 거예요.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울 수는 없지요. 저는 당신이 조금 더 용기있게 넘어질 수 있기를, 또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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