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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Apr 28. 2022

룸메이트와 매일 싸우는 당신에게

4월 28일의 악필 편지


제 아버지는 정말 깔끔한 성격입니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정리정돈 문제로 지독하게 싸웠지요. 시도때도 없이 아버지가 제 방에 들어와 책상 서랍을 열어보고는 서랍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며 책상을 엎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 치고 저는 방을 적당히 어질러 놓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쓰는 방은 여전히 항상 가지런합니다. 먼지 한 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요.


그러나 아버지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저도 깔끔을 떠는 편에 속하는 모양입니다. 그걸 느낀 게 대학원 시절 자취를 하면서였지요. 저는 룸메이트들과 청소 문제로 지겹도록 싸웠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얼굴을 찡그리며 보냈던 룸메이트도 있었고요.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왔던 그 친구들이 저를 불렀던 별명이 “서울 깍쟁이”였을 정도니까요.


이런 마찰도 어느 정도는 성격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기도 하지요. TCI라는 심리검사에서는 타고난 성격인 기질을 측정하는데, 여기에서 자극추구라는 척도가 있습니다. 자극추구 척도가 낮은 사람은 안정되고 정리된 환경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자극추구가 높은 사람은 오히려 주변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지요. 아마 제 아버지는 자극추구가 낮은 편일테고, 저와 눈을 흘겼던 룸메이트들은 자극추구가 높은 편이었을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태어나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저도 여전히 이따금은 삐그덕거리며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걸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제 방에 물건이 널부러져 있는 것 것을 이해할 수 없듯,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수도 없이 많겠지요. 이따금은 제가 상식이라고 굳게 믿어 온 것이 제게만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룸메이트가 외국에서 평생을 살다 한국에 처음 온 사람이라고 상상해보는 거죠. 이슬람교를 믿어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거나,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 이웃집에 도착할 수 있는 미국 시골에서 살던 사람이라고요. 그런 사람과 함께 살게 된다면, 룸메이트가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존중입니다. 존중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와 상대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지요. 이건 잘못을 따지지 말고 묻어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꾸 청소를 미루고, 생필품도 제때 사오지 않는 건 분명히 룸메이트의 잘못이죠.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며 따지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존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서로를 미워하거든요.


서로 존중할 때 서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도 좀 더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행동에서도 바꿔야 할 문제를 찾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존중할 때 우리는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룸메이트의 얼굴만 봐도 화가 나진 않겠지요. 누군가를 조금 덜 미워한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하루는 조금 더 평온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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