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의 악필 편지
별 것 아닌 콤플렉스 때문에 괴롭다면, 그건 이미 별 것이 아닌 게 아니지요. 왜 그렇게까지 키에 신경을 쓰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당신 내면의 세계에서 키로 인한 콤플렉스는 그 고통의 크기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이리라 생각해요. 저는 당신이 괴로워하는 당신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요.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하며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정상적인 외모를 가지고도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들을 신체이형장애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외모 콤플렉스는 별 것 아닌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몸과 관련된 콤플렉스는 단순한 열등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끝자락에 쉬이 닿고는 합니다.
그건 몸과 관련된 문제는 대개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돈이 없다면 열심히 일을 하면 될 겁니다. 공부를 못 한다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키가 작다면요? 그게 단순히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요?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로 말미암아 나 스스로를 미워해야 한다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상상해봅시다.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나 당신의 키가 훌쩍 큰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동안은 행복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절망이 완전히 해결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절망이 삶의 일부가 된 사람은 절망하지 않을 때 불안합니다. 그래서 절망을 할 이유를 찾아 절망하게 되지요. 성형 중독도 그래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 저는 조심스레 넘겨 짚습니다. 자신을 밉게 바라보는 데 익숙하니, 성형을 하더라도 자신의 미운 모습을 자꾸 찾아 더 고치려 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당신의 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칠 수 없는 단점으로 인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기적이 일어나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키가 훌쩍 크는 일은 없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은 그 열등감과 절망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기적이 아니지요. 노력한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말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요. 그러나 미운 것이 사랑스러워 보일 때까지 지켜보는 일은 오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그 대상이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저 공을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사랑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를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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