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의 악필 편지
당신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신은 눈물이 참 많았죠. 지금의 저보다도 많았죠. 기억이 닿는 가장 오랜 옛날부터 울보라는 별명은 언제나 당신을 따라다녔습니다. 아마 두 가지 이유였을 겁니다. 하나는 물론 잘 울어서지요. 다른 하나는 한 번 울면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대성통곡을 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울기만 하면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을텐데, 사람들이 울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그 시끄럽고 요란한 울음엔 얼마간의 분노도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당신은 울면서도 물건을 자꾸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겠지요.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요? 아마 스스로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넘겨 짚어 봅니다. 우는 모습이 흉한 걸 알면서도,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으면서도 꾸역꾸역 눈물을 흘리는 자신이 싫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슬프고, 그래서 더 화가 났겠지요.
그런 모습도 기억이 나요.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형편없이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이었지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들고 방에 들어간 당신은 울면서 아끼던 장난감 총들을 부숴버렸어요. 점수를 올리기 전까지 이런 건 쳐다도 보지 않겠다면서요. 그건 그냥 장난감들이 아니었어요. 용돈을 몇 달씩 모아서 사고, 고장이 났을 땐 인터넷을 보면서 직접 고치다 장난감 회사를 찾아가서 부품을 구해 고쳤을 정도로 아끼던 것들이었지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어요. 어머니는 흐뭇해하며 이따금 ‘네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지’라고 말하며 이따금 그 때를 떠올리지만, 지금의 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픕니다. 시험을 좀 망칠 수도 있는 건데 당신은 왜 그랬을까요. 어린 나이에 장난감을 좋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건데 당신은 왜 그렇게 아끼던 장난감을 제 손으로 엉엉 울면서 부숴버렸을까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벌을 주려 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보단 조금 더 머리가 컸지요. 몇 달씩 용돈을 모으지 않아도 훨씬 근사한 장난감을 얼마든지 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왜 당신이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괴롭혔는지, 여전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날인 오늘 저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어린 당신이 왜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해야 했나요? 왜 그토록 작은 가슴에, 왜 그토록 무거운 눈물과 분노를 안고 살아갔나요?
저도 오랜 시간을 답을 찾아 헤맨 의문이에요. 그러나 저는 당신이 제게 분명한 답을 주리라고 바라지는 않아요.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이 답이 무엇인지 고민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 고민이란 놀라운 힘이 있더라구요. 사랑하게 하는 힘이지요. 나를, 나의 우는 모습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타인을요. 저는 지금의 저를 좋아합니다. 이제는 울고 있는 당신을 안아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특별한 날인데도 슬프게도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별로 없네요. 장난감 총이라면, 아니면 수학 문제집 같은 거라면 산더미처럼 살 수 있지만 당신에게 전해 줄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이렇게요.
“나는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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