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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May 20. 2022

꿈이 꺾인 당신에게

5월 19일의 악필 편지


꿈을 이룬 삶이 그러지 못한 삶과 다른 것은, 그저 꿈을 이뤘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꿈을 이뤘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날 그날의 나 자신에게 달린 일이지요. 앞으로의 행복이 그저 지난 날의 노력에만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그저 고통을 인내해야겠지요. 꿈을 이룬 나는 과거의 고통이라는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에 자신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속일 겁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에도,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게 되겠지요.


꿈을 좇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으로 인해 행복할 수도 있지요. 그 꿈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면요.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나의 앞길을 이끌고, 매 순간 나를 열정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꿈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뭔가요? 경찰관인가요? 자유로운 20대의 청춘인가요? 아니면 주짓수 사범인가요? 그것들이 매 순간 언제나 당신을 행복으로 충만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인가요?


많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건 질문을 받은 사람의 책임이 아닙니다. 저는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그럴싸한 꿈을 쥐어주지요. 그리고 그 꿈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성찰할 시간을 주는 대신, 꿈을 향해 달려가라고 가혹하게 매질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소비와 노동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당신의 노력으로 거머쥔 적이 있나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그럴 수 있었거든요. 코흘리개 시절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즐거워 그걸 지금까지 쭉 했을뿐입니다. 그러다 제 삶의 방향을 글쓰기에 두게 되었지요.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를, 아직 이런 표현을 입에 담기엔 부끄러운 나이지만, 어느덧 반평생이 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저도 글쓰기가 정말 제 길이 맞는지 계속 고민해왔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저는 글쓰기가 즐거워 글을 쓰고 있으며,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그만 둘 것이라고요. 그렇게 쉽게 절필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긴 힘들 겁니다. 제가 스스로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은, 앞으로도 저는 쭉 글을 쓰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한 저는 행복할 것이며, 그 글쓰기를 매개로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확신이지요. 반평생의 경험과 고민으로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에서 제 삶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과 진로에서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지요. 그걸로 제가 열정과 노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자신은 자수성가했다며 으스대는 꼴이나 다름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오늘 당장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리고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치열하게 고민해보시기를 바라요.


세상에는 행복인 척 하는 불행이 많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해 달아나면서도 그 달아나는 길이 꿈을 향한 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하지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으며 자신은 꿈을 이루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게 최선일 때도 있지요. 행복하라는 말은 이토록 무겁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당신께 빌겠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당신이 행복하시기를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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