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의 악필 편지
누구나 달리기를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체력이 좋고 다리가 튼튼하다면 잘 뛸 수 있겠지만, 잘 뛰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오래 체력을 가꾸고 연습해야 할 겁니다. 대신 저는 글을 쓰고 사색을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몸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는 그런 차이를 우열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동선수의 몸과 글쓴이의 몸은 어느 하나가 우월하기보단 서로 다른 것이죠. 그러나 마음의 문제에서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우열을 따지려 합니다. 한 쪽이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사람을 만날 때 쉽게 긴장하시나요? 그렇다면 대인 관계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할 겁니다. 사람을 만나는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긴장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쉽게 지치겠지요. 그래서 ‘집순이’들은 피곤한 관계로부터 단절된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반대로 외향적이고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은 새로운 환경과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어갑니다. 대신 이들은 익숙하고 지루한 환경을 견디기 어려워하지요. 이런 사람에겐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는 것이 집순이가 외출을 하는 것만큼 힘든 일입니다.
이건 기질과 성격의 차이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에너지를 어떻게 충전하느냐보다, 얼마나 에너지를 잘 충전하고 잘 쓰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렇다면 집콕은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아니라 효율적인 휴식을 위한 전략입니다. 활달하고 사교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내향적인 집순이들이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대인관계에 잘 쓰고 있어서 활달해 보이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방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우울하게 침잠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집 밖으로 나올 수조차 없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고 소모되기만 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집에서 충분히 쉬면서 에너지를 회복하고, 집 밖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이어가고 있다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정말 문제는 당신이 내향적이고 집에 틀어박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당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밑도 끝도 없는 열등감에 빠지는 것이지요.
그런 열등감은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충실히 살아갈 기회를 빼앗습니다. 물론 열등감을 극복함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열등감의 극복이 스스로를 냉철한 눈으로 돌아볼 줄 알아야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저 타인을 부러워하고 한도 끝도 없이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열등감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건 내 삶의 가치를 긍정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소심한 집순이의 삶, 참 보잘것 없어 보이지요. 외향적인 삶은 화려해 보입니다. 그런 사교성과 적극성이 사회생활에 좋은 윤활유가 되기도 하고, 조용한 성격의 당신에게는 그게 절실하도록 부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변신할 수 있는 힘은 자신을 깊이 긍정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자신을 긍정하는 힘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소외시키고 타인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시도함으로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지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라는 말은 장점과 가치를 찾을 때도 통용되는 말입니다. 이제껏 한 사람의 무게를 지탱해 낸 당신의 ‘집순이’ 생활에는 마땅히 당신의 삶이 가지는만큼의 가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당신의 가치를 믿는 일이지요. 이제는 당신의 일이 남았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내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삶이 보물창고라는 것을 당신이 굳게 믿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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