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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Jun 23. 2022

삼각 관계로 괴로운 당신에게

6월 23일의 악필 편지


20대 초반 즈음에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 경우는 서로 둘도 없이 친한 친구들이 동시에 저를 좋아했지요. 지금은 술 한 잔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제가 미숙한 행동으로 두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의 저는 어렸지요.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 제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지도 못했지요. 제가 두 사람에게 준 상처가 견딜만한 것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상담사는 정신적 소진이 심한 직업입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니까요. 매일매일 다른 사연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상담사들은 상담을 오래 하면 몸이 아플 때가 반드시 온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의 이해와 공감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내면 세계에서 내담자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내담자의 내면 세계라는 표현입니다. 상담자의 내면 세계도, 내담자와 상담자가 만나는 현실 세계도 아니지요. 그렇기에 상담자나 제 3자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한 일로 여겨질 수도,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천금보다 중요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일이 내담자의 세계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상담자는 자신의 경험으로 내담자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보다는, 내담자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다음으로 볼 것은 머무른다는 표현입니다. 서로가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함께 하되 서로의 세계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지요. 아무리 내담자가 고통스러워해도 상담자가 그 고통을 대신 나눠질 수는 없습니다. 내담자가 불안해한다고 상담자도 그 불안에 전염된다면 건강한 치유가 일어날 수 없지요. 상담자의 일은 그 곁에서 머무르며,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담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제공할 수 있고, 상담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상담이 아닌 관계에도 깊은 통찰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더라도 타인의 불행으로 인해 내가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자책을 했어도 두 사람이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행복했더라도 그로 인해 두 사람이 행복해지지는 않았겠지요.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따금 타인의 세계로 초대받을 때, 그와 함께 그 곳에서 머무르는 것뿐입니다.


친구들과의 삼각관계로 자책하는 당신에겐 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당신이 한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사귀지 못한다는 것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누군가가 반드시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한 배려였다고 한들 사귀지 않는 것은 친구들의 선택이고, 그로 인해 자책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지요. 당신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입니다.


너와 나를 선명하게 분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서로에게 건강하게 의지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는 않으시기를 바라요. 당신의 감정이 당신의 것이듯, 친구들의 관계는 친구들의 것입니다. 친구들이 사귀지 않겠다고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한 책임감을 당신이 느낄 필요는 없어요. 그로 인해 친구들이 불행하다면, 그 불행 또한 친구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그 또한 존중할 수 있어야겠지요.


아마 이런 의문이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친구냐고요. 저는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따금 나의 세계가 떠밀려가는 듯한 혼돈을 만납니다. 그 소용돌이에서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반석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지요. 내 몸을 지탱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러니 저는 바라겠습니다.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짐을 든든히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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