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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Jul 21. 2022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 늙은 수상의 검은 개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낮별입니다. 악필 편지로만 여러분과 만나다 이런 글로 인사를 드리려니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어색할 땐 날씨 얘기가 국룰이겠죠? 5월에 접어들면서 서울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곧 ‘더워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어울리는 날씨가 될 것 같군요. 저는 출근길에 입었던 남방도 벗어버리고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름을 향해 우리의 삶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네요. 


저는 뜻밖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기엔 물론 이 에세이 메일링도 한 지분을 차지하지요. 에세이 메일링은 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실행에 옮기기까지 참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제 조그만 용기에 힘을 실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안내문에도 적었듯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이번 연재가 거창한 여행길이라기보단, 우리가 시시덕거리며 함께 공원길을 거니는 산책 같은 여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제 글을 싣고 싶다고 하는 곳이 있어서 갑자기 동시에 세 개의 연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에세이 연재와 악필 편지, 새로 제안이 들어 온 외부 연재지요. 제 글도 찾는 곳이 있더라고 왁자지껄하게 소문을 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 마음은 조금만 눌러 두기로 했습니다. 순탄하게 연재가 진행되어서 첫 고료를 받고 나면 제대로 된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도 입이 근질거리는 걸 아주 참지는 못해 이 곳에만 살짝 이야기를 흘려 봅니다. 우린 편지도 주고받는 깐부니까, 이 정도 자랑은 괜찮겠지요?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요. 제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떻게 비치는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연재를 마친 후 제가 피드백을 요청드리겠지만, 글을 읽으시면서도 제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거침없이 ‘답장하기’를 눌러 뭐든 말씀해주세요. 이야기를 통해 저는 더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을테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 목표하고 있는 유료 연재로의 전환도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자리의 온기가 오래 우리를 위안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온기는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나눌 힘이 되겠지요. 


저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p.s. 구독 신청서에서 제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적어달라는 칸을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채워 주셨습니다. 저는 요청이나 건의를 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 해서 넣어 둔 칸인데, 따뜻한 말들이 가득해서 깜짝 놀랐지요. 응원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요즘 하루에 한 번씩은 일부러 읽어보곤 한답니다.  





늙은 수상의 검은 개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은 우울증 환자였다. 처칠은 자신의 우울을 평생 자신을 따라 다닌 ‘검은 개Black dog’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검은 개라니, 품위 있는 번역이다. 그런데 처칠은 과연 자신의 우울증을 그렇게 우아한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마 우울증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어둠을 그런 식으로 불러주고 싶은 마음은 별로 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원색적인 표현으로 ‘개새끼’ 정도면 모를 일이다. 가는 곳마다 흙투성이 발자국을 남기고, 사람만 보면 입질을 해대며, 눈에 보이는 건 뭐든 물어뜯는 그런 골치아픈 개새끼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 우울이란 그런 것이었다. 


처칠은 애견가이기도 했다. 처칠은 어디를 가더라도 루퍼스라는 이름의 푸들을 항상 데리고 다녔다. 재미있게도 이런 기록도 있다. 처칠은 2차 대전 중에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자주 만나 전략을 논의했다. 그런데 루스벨트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애견가였고, 처칠이 그러했듯 루스벨트 또한 팔라라는 이름의 스코티시 테리어를 언제나 데리고 다녔단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정상이 군함에서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논의하는 동안, 루퍼스와 팔라는 신나게 갑판 위를 뛰어놀았던 모양이다.

 

그런 처칠이 말한 Black dog은 과연 ‘검은 개’였을까, 아니면 사고뭉치 ‘개새끼’였을까. 글쎄, 넘겨 짚건대 둘 다가 아니었을까? 개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얌전히 내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강아지를 볼 때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러나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느지막히 집에 들어왔을 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거실에 널브러진 쓰레기봉투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뭔지도 모를 것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강아지라면, 누구나 한숨을 푹 내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휴, 이 개새끼가…” 


그럼에도 우울한 사람들은 이 말썽쟁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슬플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이 친구들이니까. 세상 만사에 피곤하고 지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틈을 긁어대며 낑낑대는 건 이 친구들이니까. 그렇게 시위를 벌인 끝에 기어코 내 품으로 비집고 들어와 눈물자국을 핥아 주는 것도 이 친구들 뿐이니까. 이 친구들 앞에서는 어떤 말도 필요가 없다. 언어를 통한 불완전한 이해를 대신해 진심과 진심이 만난다. 우리는 서로를 그저 사랑할 뿐이다. 가끔은 이불에 실례를 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가끔은 산책을 까먹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감정들을 넘어 사랑할 뿐이다. 


루퍼스도 이따금 처칠의 눈물을 핥아 주었을 것이다. 자주 늙은 수상의 품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거실의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혼이 난 날이면 처칠의 침대에 보란 듯이 실례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처칠은 그런 루퍼스를 사랑했을 것이고, 루퍼스도 그런 처칠을 사랑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칠은 루퍼스에게서 자기 자신이, 그 자신의 어둠까지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차 처칠은 자신의 우울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이 어둠이 나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존재라면, 미워하기보다 그저 말썽쟁이 친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겠다고 깨닫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어둠조차도 나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루퍼스가 나의 눈물마저 핥아주었듯 말이다.


나는 처칠이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우울을 Black dog이라고 불렀으리라 생각한다. 한때는 죽도록 미워했을 친구에게 깊은 애증을 담아 붙인 이름이었을 것이다. 우울을 향한 증오는 쉬이 쌓였겠지만 그만큼의 애정을 쌓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처칠은 Black dog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상상한다.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은 그런 상상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내가 이 제목을 읽을 때 조금은 활기찬 목소리로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참 낡고도 질긴 악연으로 얼키고 설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구인 한 말썽꾸러기를 새로운 친구에게 인사를 시켜 줄 때의 목소리로 말이다. 나의 어둠과 여러분의 통성명은 이쯤 마무리해도 좋겠다. 이젠 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괴롭혔는지를 낱낱이 까서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차례다. 아마 나는 꽤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는 뉴스레터를 통해 연재했던 에세이 원고를 다듬은 글입니다. 퇴고본이기 때문에 뉴스레터 연재 당시와는 다소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매주 수/일요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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