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의 악필 편지
고민의 깊이는 애정의 깊이리라고 생각해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관계를 정리하고 훌훌 털어버리기에 당신은 친구와 너무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겠지요. 관계가 끊어진들 함께 울고 웃었던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미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된 인연입니다. 아무리 이제는 나에게 해롭고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 한들,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결심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손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관계에서 손절은 손해를 감수하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뜻이잖아요. 손해와 이득을 따져보는 것만으로 잇고 끊고를 정해도 좋을 만큼, 관계라는 것이 단순명료한 것이었을까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관계들을 생각해봅시다. 가족, 친구, 또는 연인이라 부르는 관계들이지요. 그런 관계들이 단순히 내가 이득을 보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이어나갈 수 있었던 관계인가요?
의미있는 관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집니다. 손해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계를 이어 나갑니다. 관계를 유지함으로 내가 지금 감당하는 손실보다 미래에 돌아올 이득이 더 크기 때문에 유지되는 관계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관계에 애정을 쏟지는 않았습니다. 돌이켜보건데 관계 그 자체에서 단단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저는 그 관계를 의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기 두렵다는 말을 말하기 두려워, 손절이라는 무감정한 단어로 갈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손절하겠다는 말은 더 상처받기 전에 이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는 뜻이겠지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우리가 '나는 네게 상처받았어'라고 말할 용기가 있다면, 그럼으로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직면할 수 있었다면,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요. 그 상처를 치유하며 더 단단한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든 관계가 냉엄하지만은 않고, 모든 관계가 안온하지만도 않습니다. 물론 정말 손절이 필요한 관계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관계라면, 우리가 그 관계의 온도를 조금 올려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싸늘해진 관계에 우리가 덥고 단단한 손길을 내밀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당신의 삶에 내밀어졌던 손길이, 당신의 삶을 덥혀주었던 그 때처럼이요.
이런 결단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관계에서 겪는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그 친구가 여전히 의미있는 사람이라면, 떼어내기엔 너무도 아픈 당신의 일부라면, 조금 시간을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리라 생각해요. 겨울이 찾아온다고 씨앗이 얼어붙지는 않습니다. 긴 관계에 때로는 그런 냉랭한 계절이 찾아오곤 합니다.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기꺼이 침묵에 잠기는 시간이지요.
저 또한 씨앗 몇 개를 품고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에 상처에도 불구하고 차마 접어두지 못한 관계들이지요.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리라 믿습니다. 추위가 수그러들고 우리의 고통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 비로소 친구에게 다시 인사를 건네도 좋을 겁니다. 해묵은 일에 대해 나는 네게 상처받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 봄은 찾아오고 오래 묵은 씨앗은 싹을 내밀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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