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회사를 그만두고 F가 되어간다.

Free도 아니고, Failed도 아닌, 나의 낯선 시작에 대하여 02

by 날다

02.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하루


나는 지금까지 꽤 성실한 사람이었다.


태어나 유치원을 거쳐 지금까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6년 남짓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그래야만 했고,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든, 친구든, 동료든, 상사든, 후배든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업무때문일지라도.


그 중 가장 긴 시간동안 나를 기다려주고 나의 발걸음이 향하던 곳은 회사.

내가 속해 있었던 나의 직장이었다.

나는 늘 정시에 출근했고, 마감은 철저히 지켰으며,
회사를 위해서라면 야근도,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이불 속에서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나 씻고 나면 벌써 오후였다.

“나 왜 이렇게 게을러졌지?”

지금은 더이상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늦게 일어나는 것도, 몇일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도,

세상은 모른다. 이제는 나만 아는 비밀이 되어 버렸다.


나는 오늘 하루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너무나 멀쩡히 잘만 돌아갔다.


그렇게 자꾸 반복되는 무기력한 일상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나 자신에게 자꾸 눈치를 주게 된다.

어느날 불 꺼진 방, 조용한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물이 났다.


"아... 나, 번아웃 이였나봐"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단어였다.

이걸 깨닫고 인정하는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

나는 게을러진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너무 부지런했기 때문에
쉬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한게 아니라 에너지 충전을 하고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 이였어야 했다.


이제는 조금씩 쉬는 법을 새롭게 배워 나가면 된다고,

그게 가능 할꺼라고 나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나를 위해 진정한 "삶의 쉼표"를 만드는 일이

그 어떠한 성취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