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지는 시간, 되살아나는 나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은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반복되는 하루,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마음속에 피로가 쌓여만 갈 때. 나도 그랬다. 무뎌진 감정들, 깊게 숨죽인 채 흘러가는 시간들. 그렇게 지쳐 있던 어느 날,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도착한 곳은 숲이었다. 빽빽한 건물 대신 푸르른 나무가 나를 맞아주고, 바람은 말없이 등을 토닥였다. 그저 자연이 있는 곳. 소란한 도시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안심했다.
벽난로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느릿하게 타들어 가는 장작을 바라봤다. 따뜻함은 온몸으로 퍼졌고, 불멍 속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타오르다 이내 가라앉았다. 불꽃은 말이 없었지만, 그 어떤 위로보다도 깊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나도 덩달아 느려졌다. 마음속에 있던 작은 먼지들이 바람에 날려가듯 사라지고, 고요한 숲이 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충분했다.
모처럼의 여행이었다. 멀리 떠나지 않았지만, 마음은 한참을 걸어와 머물렀다. 그렇게 다시, 나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와서도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불멍의 불빛처럼, 잔잔하게.
가끔은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자연 앞에서 잠시 숨 고르며,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춰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가위 한 자루로 다듬은 마음
가만히 들여다본 가계부. 아이 교육비 항목이 점점 굵어졌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는 하지만, 지출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이래저래 조정 가능한 부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머리를 미용실 대신 내가 잘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평소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가위를 들었다. 유튜브에서 본 셀프컷 영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한 움큼씩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손길. 숱도 치고, 앞머리도 다듬고, 마침내 마무리. 끝나고 나니 거울 속 내가 낯설면서도 꽤 괜찮아 보였다.
머리를 자르며, 나를 둘러싼 무언가가 조금은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냥 ‘익숙함’이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속에서도 해방감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살림을 아끼는 건 단순히 돈을 덜 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번 달, 나는 머리 손질비 대신 셀프 리프레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어쩌면 이렇게 작은 결심들이, 나의 일상과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