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지 모를 감동과 운명
부르고스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선 갑자기 눈물이 났다.
"꽃들도"라는 ccm이 생각나면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 입가엔 미소가 생겼다.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힘들었다고 하기엔 기쁜 마음이 들었다. 가슴속에서 몽글몽글한 느낌이 들면서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그러다 몇 초 뒤에는 발에 커다란 물집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눈물과 감동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몇 초 뒤에는 다시 울컥하는 감동이 들었다.
감동을 받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야고보가 걸을 당시 환대받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 길을 걸으며 환대받고 있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해준다. 돌아갈 집이 있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다. 함께 기쁨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가족에게 잘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한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굉장히 깔끔하고 좋았다.
1층 침대의 층고가 높아서 허리를 펼 수 있었고, 실내는 깔끔했으며, 자원봉사 호스트들은 친절했다.
폐허가 됐던 성당을 리모델링해서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 성당에서는 미사를 드렸다. 나도 미사에 경험 삼아 참여했는데, 언어는 이해하지 못해도 감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순례자를 위한 축복을 받고 나는 이런 알베르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닭장처럼 2층침대를 빼곡하게 넣은 것이 아닌, 사용자 친화적으로 운영하는 알베르게 말이다. 1층 침대의 층고가 높아 허리를 펼 수 있고, 침대의 폭이 넓어 잠꼬대를 할 수 있으며, 매트리스의 상태 때문에 허리가 아프지 않은 그런 곳
저녁을 먹을 때 이탈리아 대학생 친구가 한국인은 왜 이렇게 많이 순례자의 길에 도전하는지 물어봤다. 역시 어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활하게 대화가 이뤄졌다. 어제 같은 질문을 물어봤던 제시도 같은 알베르게를 쓰게 됐다. 저녁 식사 시간은 화목했다. 식사가 끝나고 다 같이 뒷정리를 한 다음 약간의 묵상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언어로 성경구절을 읽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 한국어 등 많은 언어로 한 구절씩 돌아가며 읽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더욱 친해진 것일 수도 있다. 향후 포르투갈 남자, 이탈리아 여자들, 오스트리아 남자를 계속해서 만나게 됐다. 가끔은 동행을 하고, 가끔은 같이 쉬면서 대화를 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는 추가적으로 기부를 했다. 이런 알베르게가 계속되어야 최초의 순례자라는 의미가 존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알베르게를 떠나기 전에 말씀 한 구절을 뽑았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이 구절을 뽑고 나의 진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직 늦지 않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와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받았다.